"오백 년 양주목 르네상스가 새롭게 시작된다." 양주시의 경기 본가 위상 되찾기다. 그 중심은 ‘양주관아지’ 종합정비사업이다. 이 사업은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시의 역사적 상징성 회복과 도시 정체성 확립에 기반을 두고 있다.

 양주관아지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1506년 중종 1년 현재 위치에 설치돼 1922년 시둔면(현재 의정부시)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간 한양 동북부 지역인 양주목을 관할한 행정관청이 있던 자리다. 동헌과 객사, 사창, 군사시설 등 30여 개의 시설이 있었다. 양주관아지는 수도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중요한 유적이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됐다. 1996년 문화체육부로부터 시범마을로 지정돼 1997년 양주목사가 사무를 보던 동헌 1동을 복원했다. 양주목사의 송덕비 20여 기도 발굴돼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양주시는 622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시가 양주목 관아를 복원하고 문화유산을 새롭게 단장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 인접한 지방행정의 중심이자 역사문화의 도시였던 양주목의 위용을 되찾고 경기북동부 역사문화의 거점 관광지로 거듭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올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양주관아지’의 역사성 등을 살펴본다.

▲ 양주관아지 복원사업 현장.
# 경기 본가 양주의 역사적 중요성

양주는 한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과거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치열한 쟁탈전의 현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도읍인 한양과 인접해 있으면서 천혜의 왕릉지로, 왕실의 사냥터로, 왕실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조선 왕조를 창건한 태조 이성계는 1395년(태조 4년) 한성부를 새로운 도읍지로 하고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아전과 백성들을 견주, 지금의 양주시 고읍동 일대로 옮겨 행정구역 명칭을 양주군으로 지명을 바꿨다. 이후 1397년(태조 6년) 양주부로 승격하고 1413년(태종 13)에는 양주도호부로, 1466년(세조 12)에는 양주목으로 승격했다.

양주목은 조선시대 정3품 혹은 2품의 목사가 파견돼 서울의 은평구 일부, 도봉구, 강북구, 노원구, 중랑구 일대를 비롯해 의정부시, 동두천시, 남양주시, 구리시, 연천군 일부, 고양시 일부 등을 통틀어 관할했던 도인 ‘한양’ 다음의 주요 도시였다. 양주의 인구 규모는 조선시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록될 당시 1만 2천465호에 6만425명으로 기록 당시 64만 명의 인구가 거주한 경기도에서 가장 많았고 전국에서 12번째였다. 1909년의 ‘민적통계표’에는 양주군의 인구가 1만7천768호에 8만5천667명으로 경기도 전체 인구 122만 명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 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 양주향교.
#양주 역사와 문화의 중심 양주관아지 복원

시는 1999년 4월 경기도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유양동 141-1 일원의 양주관아지 정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양주목사가 집무했던 동헌부와 관사로 사용했던 내아부 등을 복원 중이다.

 동헌부는 동행각, 서행각, 내삼문과 좌우행각, 외삼문, 사령청, 중렴성문, 외렴성문 등으로, 내아부는 내아, 내아관리사, 내아삼문 등으로 이뤄져 있다. 관아지 인근에 무형문화재 통합공연과 민속놀이 체험, 전통문화 체험 등을 위한 전통놀이마당과 관광 편의시설인 주차장, 관리센터 등을 건립하고 양주별산대전시관을 양주 무형문화재 전시관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관아 건물을 활용한 한옥 숙박체험, 전통 찻집 등 문화재를 활용한 사업을 구상하는 등 양주관아지 정비복원 사업을 통해 경기북동부 역사문화 테마 거점 관광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풍자와 해학의 민중극, 양주별산대놀이와 전통교육의 산실 양주향교’

국가무형문화재 2호로 보호 받고 있는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과 중부지방에 전승돼 온 산대놀이의 한 분파이다. 조선 광해군 때 설치된 산대도감이 인조 12년(1634년)에 폐지됨에 따라 이에 속했던 예인들이 각기 연고지로 흩어져 공연패를 만들게 됐다. 이때 형성된 놀이패인 녹번, 아현, 구파발, 사직골 등지의 ‘본산대(本山臺)’와 구별해 ‘별산대(別山臺)’로 불렸으며, 현재 본산대가 소멸된 상태에서 가장 오래된 산대놀이의 옛 형태를 전승하고 있다. 파계승과 양반 등 당시 특권계층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돋보이는 민중극이다.

 1983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된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01년)에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돼 많은 유학자를 배출했다. 양주향교는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1610년(광해군 1년)에 재건됐다. 한국전쟁 때 다시 소실된 것을 양주 유림들이 힘을 모아 1958년에 대성전을, 1984년에 명륜당을 복원했다.

▲ 양주관아지에 있는 어사대 비.
대성전에는 5성(五聖-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과 송조2현(宋朝二賢-주자, 정자), 최치원, 정몽주 등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돼 있으며, 명륜당은 인성교육, 전통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의 도시를 만들고 있는 양주

시는 경기도 제1의 도시이자 경제,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던 역사 속 양주목의 찬란했던 위용을 ‘양주관아지’ 정비복원 사업을 통해 현재로 불러내고 있다.

 경기북부 행정 역사의 모태이자, 수도권의 행정중심 도시로서 옛 양주목의 위상이 1963년 의정부시 분리, 노해면 서울시 편입, 1980년 남양주시 분리, 1981년 동두천시 분리 등으로 인구 7만 명으로 떨어지며, 소도시로 전략했던 시는 현재 인구 21만 명으로 2020년 인구 30만 명의 경기북부 중심도시로 거듭날 전망이다. 특히, 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오백 년 양주목 르네상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게 될 이번 양주목 관아의 복원은 양주가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선도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양주=전정훈 기자 jjhu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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