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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1924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 3면 1단 머리기사 제목이다. 기사 요지는 1923년 4월부터 12월까지 총 9개월 동안 인천 시민이 하루에 먹은 맥주 양이 ‘2십여 석(石)’이고, 가격으로는 1년 동안 ‘오십육만여 원’이라는 것이다. 여러 해 인천의 맥주 소비 추세나 혹은 다른 시도와의 비교 같은 것도 없이 달랑 이 기사만 있어서 의도를 알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맥주 소비가 늘어 가는 데에 따른 경계의 목소리가 커지던 때여서 번화한 항구 도시 인천의 맥주 소비를 일부러 기사화 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 "아홉 달 동안에 인천에서만 팔린 맥주가 십오만 일천이백육십팔 병(甁)에 석수로 환산하면 육천삼백칠십팔 석 팔 두 팔 홉이라 하며 일본 술이 이천구백육십육 석 일 두 팔 승(升) 도합 구천삼백사십사 석 구 두 팔 승 팔 홉"이었다고 한다.

 또 "이것을 가격으로 따지면 맥주는 한 석에 구십 원 평균 잡고 구십이만 일천사십팔 원 구십이 전이오 일본 술은 한 말에 십육 원 평균하야 사십칠만 사천오백팔십팔원 팔십 전 도합 오십육만 육천칠백삼십칠 원 칠십이 전이라 하며 이것으로 보면 하로 평균 삼십 석가량에 이천여 원"이라는 것이다. ‘일본 술’은 정종이나 기타 술을 말하는데 서양 술인 맥주와 구별하기 위해서 굳이 그렇게 쓴 것이 아닌가 싶다. 맥주는 당시 조선에 상륙한 일본 맥주 상표에 따라 판매량을 집계해 놓았다. 가장 많이 팔린 맥주가 ‘삽보로표’로 "육만 구천구백칠십육 병(二千九百四十一石)"이고, 그 다음이 ‘기린표’로 "오만 칠천구백이십사 병(二千四百五十九石七斗四升五合)"이다. 그리고 ‘사구라표’가 "이만 삼천삼백육십팔 병(九百七十八石三合)"으로 그 뒤를 따른다.

 1933년에 발간된 「인천부사」에는 1923년 당시 인천 인구가 조선인 2만8천93명, 일본인 1만1천228명, 중국인 1천579명, 서양인 32명 등 총 4만932명으로 나와 있다. 그러니까 산술적으로는 9개월 동안 인천 인구 1인당 약 3.7병의 맥주를 마신 꼴이 된다. 석수로 환산하면 0.16석, 이것을 다시 L로 표시하면 6.4 L이다. 그리고 금액으로는 1인당 22원 51전가량 지출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맥주 500㎖ 가격이 대략 1원 75전인 셈인데 일반 물가에 비추어 상당히 비쌌던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쇠고기는 1근에 40전, 달걀은 한 꾸러미에 35전이었다. 이렇게 이 기사는 1923년 4월부터 12월까지 인천에서의 맥주와 일본 술의 소비량을 흥미롭게 보도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기사 저변에 술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용을 읽어가면서 문득 94년 전, 당시 인천 사람들은 어떤 분위기에서 맥주를 마셨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말이 난 김에 한 가지 더 맥주에 관련한 인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무렵 인천은 ‘맥주 분공장 설치’ 때문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1924년 11월 20일자 동아일보는 "일본 맥주회사 분공장을 조선에 설치할 의사가 잇슴으로 <중략> 여러 곳으로 답사하든 중 재등 총독은 인천 방면으로 함이 좋은 뜻을 말하야 그 회사 기사는 영등포 등디를 보앗스나 적당치 못하얏슴으로 인천에 와서 본 결과 인천부 도산정 뒤 덕생원(德生院) 부근이 선택된 모양이라는 말도 잇다고." 하는 기사를 싣는다.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되는 것을 보면 인천이 상당히 유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당시 조선총독이었던 재등(齋藤)이 인천을 적극 추천한 듯한 정황까지 보임에랴.

 재등은 아마 인천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더 적극적으로 입김을 불어 넣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저런 분위기 때문이었겠지만 그해 11월 21일에는 인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인천 경제계 유력가, 유지들이 나서 ‘일본 맥주회사 분공장 설치 요망’을 결의하는 등 유치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 인천의 맥주 분공장 설치 문제는 별다른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채, 1933년 조선맥주와 소화기린맥주가 연달아 영등포에 설립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무슨 이유로 불발이 되었는지 모르나, 만약 동아일보 기사대로 이루어졌다면 인천이 우리나라 맥주 생산의 본고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도 다 인천의 운수소관이라고 생각하면 무더운 날씨가 더 더운 것 같다. 열을 식히는 방법은 샤워와 그 끝에 마시는 청량한 맥주 한 모금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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