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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젊은 남자가 한가한 도로 옆에 차를 세운 채 우산도 없이 서 있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고장난 할머니의 차를 수리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사례비를 주려고 하자,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례라니요? 대신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보면 도와주세요."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젊은이와 헤어진 할머니는 집으로 가던 중에 작은 카페에 들렀습니다. 마침 여종업원은 할머니의 젖은 머리를 보고 수건을 건넸습니다. 그 종업원은 만삭인 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 몸으로 일을 하니 얼마나 고될까? 그런데도 어쩜 저리도 친절할까?’

 여종업원을 바라보는 순간 할머니는 조금 전에 만난 브라이언이라는 젊은 친구가 남긴 마지막 말을 기억해냅니다.

 "대신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주세요."

 식사를 마친 할머니는 그녀 몰래 식탁에 작은 쪽지와 함께 100달러짜리 지폐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당신의 친절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게 빚진 게 없답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지금 이렇게 베풀 뿐이에요. 만약 되갚고 싶다면 이 사랑의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여종업원은 무척 감사해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 부부가 얼마나 돈이 절실한 지를 어떻게 아셨을까? 다음 달에 출산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집에 돌아온 그녀는 먼저 잠이 든 남편의 귀에 속삭였습니다.

 "여보,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죠? 앞으로 잘될 거예요. 사랑해요. 브라이언!"

 그랬습니다. 아까 도로 위에서 할머니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녀의 남편이었던 겁니다. 친절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곤 합니다. ‘좋은 생각’이란 곳에 소개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면서 문득 언젠가 읽은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1930년대, 독일의 어느 마을에 나이가 많은 유태인 선교사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이면 동네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웃으며 인사를 서로 나누곤 했지요. 그런데 20대 후반의 ‘밀러’라는 청년만큼은 유독 선교사의 인사를 외면했습니다. 유태인을 혐오했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선교사는 밀러를 볼 때마다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세월이 흘러 히틀러가 집권을 하게 되고, 곧이어 유태인들은 강제로 수용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선교사도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유태인들을 운동장에 모이게 하고는 한 줄로 세운 뒤, 사람들을 왼쪽 편과 오른쪽 편으로 갈라놓습니다. 사실은 왼쪽에 선 사람들은 총받이로 보내질 사람들이었고, 오른쪽에 선 사람들은 귀가조치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왼쪽’은 죽음이고, ‘오른쪽’은 생존을 의미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들의 생과 사는 유태인들을 손가락으로 왼쪽, 오른쪽을 가리키는 한 병사에 의해서 내려졌습니다.

 나이 많은 유태인 선교사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앞사람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을 때, 생사여탈권을 쥔 그 독일군 병사가 바로 ‘밀러’가 아닌가요? 선교사는 늘 그랬듯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은 채 "안녕하세요, 밀러씨?"라고 말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밀러라면, 이 선교사를 어느 쪽으로 가라고 했을까요? 네, 여러분의 마음처럼 밀러의 손가락은 ‘오른쪽’을 가리켰다고 합니다. 바로 미소가 주는 힘, 친절이 주는 힘일 겁니다. 이렇게 보면 미소라는 친절은 행운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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