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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최근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슈밥 회장이 처음 언급한 말로서, 물질세계·디지털 기술·생명공학 등 분야 간 융합기술을 기반으로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인류는 3차에 걸친 산업혁명을 경험했다. 1차 산업혁명은 18세기의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혁명을 특징으로 하며 수공업시대를 기계화시대로 변화시켰다. 2차 산업혁명은 19~20세기 초의 전기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혁명을 특징으로 하며 전기와 생산조립 라인의 출현으로 대량생산 체계 구축을 가능케 했다.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후반의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디지털 혁명을 특징으로 하며 반도체와 컴퓨터·인터넷혁명으로 정보의 생성·가공·공유를 가능케 하는 정보기술시대를 열었다.

 한편, 인류가 새롭게 맞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의 만물 초지능 혁명을 특징으로 하며, 사람·사물·공간을 연결하고 자동화·지능화돼 디지털·물리적·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기술이 융합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허구이며 기술낙관론자들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변화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정보기술(IT) 발전은 혁명(revolution)이 아니라 단순 진화(evolution)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혁명’으로 부르든 ‘진화’로 부르든 어쨌거나 인류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초대형’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변화의 계기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모멘텀으로 슬기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무릇 레이스에서 앞선 자를 따라잡으려면 변화의 시점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달리기나 스케이트 경주에서 뒤따르던 주자가 앞선 주자를 따돌리는 경우는 대개 코너링을 할 때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선진국가로 웅비하려면 이 변화의 시기를 잘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미래의 유망 산업분야의 대부분을 이미 선진국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어 향후 우리 기업의 미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새 시대의 개막을 더 열심히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과학·기술의 발전에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이 발전되고 제대로 운용될 수 있도록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게 우리 사회의 인프라를 리모델링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고속철은 철도여행의 새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고속철이 제 속도를 내려면 고속철에 맞는 새로운 ‘레일’이 필요하다. 고속철은 증기기관차나 디젤기관차가 달리던 종전의 레일 위에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고, 잘못하면 탈선하게 된다. 고속철 차량만으로는 고속 주행할 수 없으며 고속철 차량에 적합한 ‘레일’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갖춰야 할 새로운 ‘레일(인프라)’은 무엇인가.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이 제대로 정착·작동될 수 있는 ‘법과 제도’이다. 즉, 4차 산업혁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지능기반사회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은 과학·기술자와 경제·경영학자들만의 화두가 돼서는 안 되고, 법학자들이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많은 공무원들이 협업해야 한다. 새로운 ‘레일(인프라)’을 가설함에 있어서 종전에 없던 법과 제도를 창안하거나 선진국의 우수한 법과 제도를 도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아직 온존하고 있는 구시대의 법과 제도들을 걷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재임시기와 민주화 역행시기에 ‘독재·획일 프레임’에 맞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독풀’처럼 또는 ‘녹슨 레일’처럼 위험요소로 남아있는 경우가 꽤 있다. 하루속히 이 잔재들을 털어내고 씻어내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품위를 나락에 떨어뜨리는 ‘갑질 문화’도 빨리 척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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