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맘껏 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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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맘껏 놀게 하라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전 인천 남부교육장
  • 기호일보
  • 승인 2017.08.14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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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얼마 전 유엔 지속가능 개발연대(SDSN)는 2017년 세계 행복도 보고서에서 각 나라의 행복지수 랭킹을 발표했다.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 수명, 인생 선택의 자유도, 국민의 사회의식 수준 등이 평가 항목으로 포함됐다고 하는데 155개 조사 대상 국가 중 역시 서구 선진국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우리나라는 56위에 위치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구호 비정부기구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 아동의 행복감 국제 비교연구’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물질적 여건은 최상위권인데 반해 ‘행복감’은 에티오피아 등과 함께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왜 이런 연구 결과가 나왔을까? 한국 초등 3학년은 방과 후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노는 시간 비율은 16위로 꼴찌였다. 친구와 함께 놀거나 운동을 하는 여가 활동 수준도 12위에 그쳤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한 교수는 "물질적인 지표에서는 국제적으로 최상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아동 스스로가 느끼는 행복감이 하위권인 까닭은 아동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후쿠오카시에서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거나 무기력하고 체력이 약한 어린 학생들을 위해 2002년부터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와글와글 놀이터 사업’이란 것을 진행한다고 한다. 학교 교정에서 놀이터 운동가와 함께하는 이 사업에는 후쿠오카 초등학생 20% 이상이 참가해 3시부터 5시까지 맘껏 놀고 간다고 한다. 이 사업을 위해 후쿠오카 시에서 30억 엔의 예산을 편성해 학교별로 2천만 엔씩 지원하고 코디네이터까지 배정해 적극 돕고 있다고 한다.

 유엔아동기금(UNICEF) 한국위원회와 서울시설공단은 7월 초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맘껏 놀이터’를 개장했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잃어버린 한국 어린이의 놀 권리를 회복하도록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권고해 나온 결과물이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대지구에는 기적의 놀이터라는 이름의 특별한 놀이터가 지난 5월 초 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 놀이터에는 큰 미끄럼틀 정도를 빼놓고는 깊고 넓은 모래밭, 작은 언덕들과 조그만 도랑, 잠시 쉴 수 있는 공간 정도만 있을 뿐 변변한 놀이기구조차 없다. 그러나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놀이터이지만 그 놀이터에는 밝은 표정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들로 차고 넘친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이상한 놀이터에 아이들이 몰려들면서 엄마, 아빠들까지 함께 오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라남도의회에서는 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어린이 놀 권리 보장에 관한 조례안’이 도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고 한다. 조례는 교육감에게 교육과정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놀이활동 활성화 시책을 마련하고 지원계획을 매년 수립·시행하도록 했다. 특히 학교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어린이가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학습 부담을 줄이는 데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이 놀라운 조례를 발의한 의원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모든 어린이는 휴식, 여가,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돼 있고 우리나라도 이 협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데, 어른들의 잘못된 교육관 때문에 맘껏 놀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고 지적한다.

 서울 성북구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동행카드 지원’은 더 놀라운 사업이다. 성북구에 주소를 둔 중학교 1학년과 만 13살 학교 밖 아이들은 물론 외국인 아이들도 포함해서 연간 10만 원의 용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현금을 주는 것은 아니고 10만 원의 포인트가 들어 있는 동행카드라는 것을 만들어 관내 영화관과 서점, 스포츠 경기장, 박물관, 교습소 등 문화예술체육 분야의 진로 체험이 가능한 가맹점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다만 학습참고서는 살 수 없고, 노래방이나 피시(PC)방을 이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식음료를 사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아동·청소년 동행카드 지원’은 오로지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원칙을 담은 사업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피곤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모든 아이들은 맘껏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내 오랜 교육 경험에 의하면 잘 노는 아이가 심신이 건강한 아이이고 공부도 잘 한다. 아이들을 맘껏 뛰어 놀게 하자. 아울러 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멋진 놀이터도 곳곳에 만들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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