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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친구 어머니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정정하시고 정갈하신 분이 병상에 꼼짝없이 누워 계신 모습을 보는 마음이 안 좋았다. 여든 다섯의 연세에도 마음은 소녀 같아서 어머니를 뵈면 곱게 나이 들고 싶다 생각했었다.

 화장실에서 넘어져 고관절 골절로 쇠를 박는 수술을 받고 한 달을 누워 꼼짝 못하고 그대로, 그 뒤부터는 재활병원으로 옮겨서 몇 달째 입원 중이시다. 재활치료 덕분에 지금은 휠체어로 병실 바깥나들이도 하고 병원 주변 식당에서 가끔 식사도 하실 만큼 호전되셨다.

 친구의 효심이 감동이다.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 종일 병간호를 할 수 없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 병실을 찾아와 온갖 간병 뒤치다꺼리를 한다. 간병인이 있기는 해도 딸만큼이야 하겠냐면서 까다롭게 참견하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다.

 "우리 엄마 예전에 참 예쁘셨는데 누워있는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프네."

 친구의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맏딸인 친구와 7살 터울 남동생이 있지만 친구의 아버지는 무슨 이유에선지 친구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아예 딴 살림을 차리셨다. 가끔 찾아오다가 어느 해부터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남편 없는 집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남매와 살면서 시댁 제사며 식솔 의식주며 집안 행사며 고단한 삶을 사신 어머니라, 친구의 효심이 남달랐다.

 예전에 군대를 제대하고 온 남동생이 젊은 혈기에 가만 두지 않겠다며 아버지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 때려 엎을 작정으로 수소문해 찾아간 집에 아버지를 빼닮은 막내 여동생을 보는 순간 펑펑 울었다고 했다.

 아버지 얼굴 그대로인 배다른 여동생을 보고 핏줄이 뭔지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너도 나도 아버지 잘못 둔 죄라며 잘 살아 다오, 오히려 부탁을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4남매가 상면을 했다는 친구의 말에 가슴이 쏴하게 아팠었다. 애증의 아버지는 영면에 드시고 오십 된 남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내 친구는 올케에게 우리 엄마 밥 차려 주고 빨래해 주고 모시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엄마 간병은 당연히 내가 하겠다고 했다 한다.

 재활병원 병실에는 친구 어머니 병상 옆에 전직 여교장 출신의 할머니가 계신다. 늙었다 생각하는 우리가 병문안을 가면 교장선생님이셨던 할머니가 반긴다. 젊은 색시들이 오니 병실이 환하게 빛이 난다 하신다. 당신의 보조 베드에 앉으라고 청하고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료수며 간식거리를 꺼내 먹으라고 성화시다. 이 또한 싸한 슬픔이 느껴진다.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생에 한 번뿐인 꽃 같은 아름다운 시절’이 있다.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 ‘화양연화’(和樣年華)의 한자 풀이말이기도 하다.

 중국말 ‘화양’(和樣)에는 꽃모양과 속임수라는 중의적 뜻이 있다고 한다. 영화 제목을 풀이해 보면 일생에 한 번뿐인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신기루 같아서 실제인가 허상인가 진실의 실제가 무엇인지 허무함을 품고 있다. 영화는 해피엔딩이라고 보기에는 억지가 있고 비극의 감성을 배경으로 깔고 막을 내린다.

 ‘화양연화’ 영화는 문장 한 구절을 스크린에 흘려보내면서 시작한다.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화면에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이윽고 영화는 끝이다.

 당신의 현실이 낙타가시풀을 먹는 것 같았어도 신기루 같은 사랑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냈는데 사랑도 고운 나이테도 흔적 없고 모든 것이 희미해져 기억 속에 흐려져 애절함만 남는다. 그렇게 신기루 같았을지라도 다시 ‘화양연화’한 시절을 병문안 선물로 드리고 싶다. 친구 어머니께도 전직 여교장 할머니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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