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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 및 실행하도록 지시한 혐의에 대해 유죄로 판단했다. 김 전 실장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고(구형은 징역 7년이었다), 조윤선 전 장관에게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구형은 징역 6년이었다).

 이에 대해 ‘너무 관대한 판결’이라고 비판 여론이 거세다. 우선 주무부처 수장의 자리에 있으면서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지시에 무관하지 않은 조 전 장관에게 (기소된 다른 공무원들은 유죄를 받았는데)무죄가 선고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 전 장관의 남편으로서 변호를 담당했던 김앤장 소속의 박성엽 변호사가 담당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이기 때문에 봐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국회 위증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회 위증이란 국민의 대의기관이자 헌법기관인 국회를 기만하는 행위로서 곧 주권자인 국민을 속이는 것이어서 위법성이 매우 크다. 더욱이 일반인도 아닌 공직자가, 그것도 ‘장관’이라는 막중한 직책을 가졌던 자가 국민적 관심이 크게 쏠린 중대 사안에 대해 국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중범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했으니 ‘너무 봐줬다’는 비판을 듣는 것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김 전 실장에게 선고된 징역 3년형도 너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검은 기소의견에서 "헌법이 수호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네 편, 내 편’으로 갈라 나라를 분열시켰다"고 밝혔다. 법원도 "지원 배제는 헌법 등이 규정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한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고작 징역 3년을 선고한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헌법을 위반한 중대 사범을 마치 ‘절도범 등 잡범처럼’ 취급한 것이니 비판받아도 마땅한 것 같다.

 특검과 김 전 실장 및 조 전 장관이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다고 하니 향후 항소심에서 어떤 형량이 선고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한편, 관심을 끄는 재판이 또 있으니 그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이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정치나 선거에서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며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구형량이 너무 낮아 법원에서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역죄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구형량은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 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12년을 구형한 것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달 30일 예정된 선고공판에서 원 전 원장에게 과연 어떤 형량이 선고될지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 향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떤 형량이 구형되고, 어떤 형량이 선고될지도 자못 궁금해진다.

 법원의 판결은 법리와 법관의 양심에 따라 내려져야 하고, 국민의 법감정에 의해 웬만큼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 재판이 여론에 휘둘려서는 안 되지만, 국민들의 보편적 정의·형평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사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 참작해야 할 사항으로 ‘범인의 연령, 성행(性行),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을 제시하는데, 그 취지는 형량이 범죄행위의 위법성·책임성 및 사회적 해악의 크기에 합당하게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지도층의 범죄와 공익침해범죄, 특히 민주주의 훼손 등 국기문란 사범을 더욱 엄중 처벌해야 함은 너무너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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