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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박근혜 정부 말기에 범정부적으로 추진했던 성과연봉제가 결국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후속조치 방안’을 의결해 성과연봉제 이행 기간을 없애고 노사가 자율적으로 시행 방안과 시기를 조율하도록 했다. 법원에서는 "노조 동의 없이 도입하기로 한 성과연봉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놓고 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추진했던 성과연봉제가 이처럼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성과연봉제(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이를 두는 임금 지급방식)라는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도입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기업, 직무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공정한 성과평가제도가 미비된 채 단기간 내에 획일적으로 성과연봉제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하다는 점, 노사합의 없이 성과연봉제를 일방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법·무효라는 점 등의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노사자치의 영역’에 직접 개입해 군사작전하듯 무작정 밀어붙였었다. 돌이켜보면 일방적 성과연봉제 추진에 대한 노동계의 집단반발이 촛불 민심을 확산시키고 종국에 정권의 몰락에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너무 의욕을 앞세워 노동정책을 일방통행식으로 가져가면 곤란하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 내에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를 단숨에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관례는 모든 사업장에서 상당 기간 지속돼온 일종의 ‘사적 자치의 영역’인데, 이를 일시에 없애겠다고 하는 의도는 무리하다. 경영자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필요할 때 쉽게 해고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영자들이 비정규직 고용을 선호하는 원인을 해소·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단순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일방적·획일적으로 추진하면 노동시장이 왜곡되고 편법·탈법행위 등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교육부가 기간제 교사를 전면 정규직화하는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한 점, 절대평가 확대를 골자로 한 수능개편 시안을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점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공·사기업의 인력 채용 시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 문제도 좀 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본다. 인력을 채용할 때 능력, 노력, 성과(학교성적, 자격증, 기타 스펙 등)를 모두 무시한다면 평소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 역차별을 받게 되고, 기업의 인력 채용의 자유를 제약할 우려가 크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 즉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는 것’이다. 능력, 노력, 성과가 우수한 자를 합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능력, 노력, 성과가 높은 자나 낮은 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엘리트와 근면성실한 자를 우대하는 풍토가 확산돼야 한다. 특히 자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을 합당하게 양성하고 대우하는 분위기의 형성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모든 정책분야, 특히 교육과 노동정책 분야에서 지나치게 획일성과 형식적 평등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능력, 노력, 성과를 무시하고 ‘블라인드(blind)’ 처리하면 종국에는 우리 사회 전반이 ‘블랙 아웃(black out)’될 우려가 크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하는 평등권은 ‘기회의 균등’을 내용으로 하는 ‘실질적 평등’, ‘상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지 ‘형식적 평등’, ‘절대적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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