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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법을 아무리 명확하게 규정한다 하더라도 해석상 논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법률전문가들조차도 법 해석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국민들은 어떤 견해를 따라야 할지 헷갈린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유권해석’, 즉 국가기관이 유권적으로 내리는 해석이다. 유권해석에는 입법해석(입법기관이 법을 제정하는 권한으로 해석 규정을 둬서 해석을 꾀하는 것), 행정해석(행정관청이 법을 집행할 때, 또는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대한 훈령·지령 등을 내리면서 법을 해석하는 것), 사법해석(법원이 구체적 소송사건의 해결을 위해 내리는 해석)이 있다. 유권해석마저 불분명하면 국가는 혼란에 빠진다. ‘통상임금 산정범위’와 관련한 법적 논란이 그 예이다(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1부(재판장 권혁중)는 기아자동차는 근로자들에게 4천223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려 큰 주목을 받았다).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시의 할증임금의 산출 기초가 되는 ‘통상임금’의 산정범위에 대해 법적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입법해석의 불비이다. 일본에서는 통상임금 산정범위와 관련한 논란이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할증임금의 기초가 되는 임금에 불산입하는 임금항목’을 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 노동기준법 제37조 제5항). 그런데, 우리 근로기준법은 이러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더욱이 1982년에 (모법상의 근거 규정도 없이) 시행령에서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두었는데(제6조),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해석상의 논란이 지속돼 왔다. 최근 정부는 일본처럼 ‘할증임금의 기초가 되는 임금에 불산입하는 임금항목’을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시에 그렇게 했더라면 애초에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 노동기준법을 모델로 우리 근로기준법을 만들 때 일본법의 규정을 ‘제대로 베꼈어야’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이나 입법의 미비를 방치해 왔다.

 둘째, 행정해석의 불합리성이다. 정부(노동부)는 일종의 행정해석인 ‘통상임금 산정지침’(1988년 제정, 개정 2012.9.25. 고용노동부 예규 제47호)을 통해 통상임금 산정 범위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을 해소하고자 했으나, 이 지침이 판례(사법해석)와 상이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어 운영상의 혼란을 오히려 가중시켰다.

 셋째, 사법해석의 비일관성이다. 법원은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여러 차례 변경하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이 전원재판부 판결을 통해 판단 기준을 제시했으나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분명한 점을 포함하고 있어 현장에서는 지금도 혼란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이 통상임금 산정범위를 둘러싼 유권해석(입법해석, 행정해석, 사법해석)은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였다. 법치주의 운용의 한심한 수준을 ‘민낯’ 그대로 드러냈다. 애초 법을 만들 때 일본법처럼 통상임금 산정범위를 법에서 명확히 규정했더라면 혼란이 예방됐을 것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입법부에 큰 책임이 있다. 또한, 정부 입법 방식으로라도 입법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이를 방치해온 점, 시행령에 모호한 정의규정을 둔 점, 판례와 다른 내용의 행정해석을 고집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킨 점 등 행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 그리고 판단 기준을 수차 변경해온 사법부에도 책임이 있다.

 한편, 정부(노동부)가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과 관련해 "이때의 연장근로시간에는 휴일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않는다"며 ‘1주일’을 ‘7일’이 아닌 ‘5일’로 보는 행정해석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불합리하다. 이 문제를 국회가 입법해석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 대법원에서 시급히 사법해석을 내놔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된다. 어떻든 ‘신중치 못한 어설픈 행정해석’이 혼란과 손실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정부는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법 해석을 명확히 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기초이며 국가의 기본임무이다. 국가는 체계적·합리적인 법 해석을 통해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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