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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뉴스에 보면 이 세상을 좌우할 듯한 사람들의 소식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세상은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보통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추적해보면,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말도 늘 달라진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더군요. 그러나 세상의 박수 소리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그리고 즐겁게 해나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은 고된 삶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놓곤 합니다. 그렇게 고된 일을 정작 자신들은 기쁘고 기꺼이 해나가니까요. 성숙한 사회란, 아니 행복한 사회란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많은 사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어느 철강회사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맡은 청소 구역은 정원이었지만, 그는 더러운 곳이 눈에 띄면 그곳이 자신의 구역이든 아니든 말끔히 청소했습니다. 그의 이런 성실함을 알게 된 그 회사 회장이 그를 사무직으로 발령을 내게 했고, 나중엔 비서로 승진까지 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회장이 물러날 즈음에는 그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됩니다. 여기서 회장은 철강왕 카네기이고, 후계자는 찰스 쉬브라는 사람입니다. 「시크릿, 하루 한마디」라는 책에 소개된 이 사례에서, 세상은 영웅이 아니라, 성실한 보통사람들이 만들어간다는 위안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과 성공은 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즐겁고 기꺼이 해내는 사람들일 겁니다.

 머슴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가장 오랫동안 일한 두 명의 머슴을 불러놓고, 볏짚 두 단을 주면서 말합니다.

 "자네들 덕에 내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네. 그래서 내일부터 자네들에게 자유를 줄 걸세. 그런데 마지막 부탁이 있네. 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지금 나눠준 볏짚으로 가늘고 길면서도 아주 튼튼한 새끼줄을 꼬아주시게."

 주인이 방을 나가자, 칠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머슴은 이내 불평을 토로합니다.

 "아니, 자유를 준다면서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부려먹으려고 해?"

 이런 마음으로 새끼줄을 꼬니, 어떻게 튼튼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엉성하고 헐겁게 꼬았습니다. 그러나 팔복이는 달리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이 집에 들어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주인 덕분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 새끼줄을 촘촘히 짜서 결국 아주 튼튼한 새끼줄을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주인은 두 머슴을 곳간으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의 한쪽 편에는 엽전들이 무척 많이 쌓여 있습니다. 주인이 말합니다.

 "이제 이 집을 나가면 자유롭게 살게 될 그대들에게 내가 줄 것이 있네. 여기 있는 엽전들을 그대들이 가져갈 만큼 많이 가져가시게. 그리고 그 돈으로 여생을 행복하게 사시게. 다만 그대들이 어제 꼬아놓은 새끼줄에 엽전들을 꿰어서 가져가시게."

 참 재밌는 우화지요? 칠복이의 새끼줄은 헐거워서 아무리 엽전을 끼워도 흘러내렸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결국 행복의 문을 열어 젖힐 겁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행복은 쉽게 얻어지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쉬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즐겁게만 하면 되니까요. 어떤 일이라도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하면 되니까요. 그런 일을 할 때마다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이 모여서 감동이 되고, 그 감동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아름답게 만들 테니까요. 돈, 명예, 권력이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삶의 자세가 기준이 되는 세상이 이곳이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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