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산 정상에서 바라 본 인천시 전경.  <기호일보DB>
▲ 문학산 정상에서 바라 본 인천시 전경. <기호일보DB>
문학산은 인천시민들에게 의미가 깊은 역사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인천 역사의 발원지로서 비류의 미추홀 왕국과 뿌리를 같이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문학산 일원에는 문학산성과 학산서원 터 등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들이 집약돼 있다. 또 특정 기념물이나 자연물, 장소 등을 모티브로 하는 다양한 전설과 이야기도 내려져 오고 있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문학산 정상이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그동안 방치됐던 역사적 상징성을 회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상태다.

이 중 문학산성은 「동사강목」과 「여지도서」 등의 문헌을 통해 적어도 18세기 중엽부터는 비류의 일대기를 담은 백제 건국신화가 깃든 공간으로 인식돼 왔다. 조선시대에도 문학산성을 비류의 미추홀 정착과 연결시켜 기록했을 만큼 이곳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월이 흐르며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모두 소실됐다. 1986년 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되며 여러 차례 관련 조사가 실시됐으나 남아 있는 성벽 일부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2014년에는 유적조사를 통해 등산로에서 산성 주변 방어 진지로 추정되는 건물 터와 통일신라시대 유물을 찾았지만 군사시설이 개방되기 이전이어서 구체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현재 남구는 문학산 정상이 개방된 만큼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문학산 조성 외에도 군사통제보호구역에 묶여 있던 문학산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문학산성 복원과 보존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회의, 문학산성 주변 발굴조사, 문학산성 정밀 지표조사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며 향후 보존 및 종합 정비 방안을 모색 중이다.

추정 터만 남아 있던 학산서원 재현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학산서원은 조선시대 서원 중 인천에서는 유일하게 임금이 이름을 지어 이를 새긴 편액을 내린 사액서원이다. 18세기 초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존재했던 학산서원은 현재의 인천 전역을 통틀어 유일한 서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서원 건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로 나타난 인천 선비들의 의지, 배향 인물들의 학문과 덕행은 지역사회에 구심점을 만들고자 했던 인문학 정신의 산실로 볼 수 있다는 게 구의 설명이다. 구는 최근 진행한 학술조사 결과를 토대로 올해 하반기 서원 추정지에 대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학산서원의 흔적을 찾아 우리 후손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돌려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문학산 정상 개방으로 첫걸음을 뗀 만큼 충분한 조사와 지역사회 공감의 과정을 거쳐 문학산 본연의 모습을 찾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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