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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식 사회부장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끄 루이 다비드의 대표작인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잔상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작품이다. 180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당시 전략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마렝고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해 그린 작품이다.

 포효하는 말 위에서 당당하고 기백 넘치는 모습으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을 명령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그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이 담겨 있다. 그는 눈 덮인 알프스를 넘으며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용맹함을 보면 정말 못해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는 리더로서 부하들을 독려하며 ‘나를 따르라’고 외쳤을 것이다. 승리를 위한 주문이다. 그 주문은 "싸움의 결과는 내가 책임질 테니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리더의 덕목은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 책임은 ‘나를 따르라’는 짧은 말 속에 포함된다. 중동의 작은 토후국 두바이를 전 세계 국가와 지도자들이 벤치마킹하는 나라로 변화시킨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 그는 창의적인 비전을 앞세워 모래가 날리는 사막에 스키장과 잔디 골프장, 회전하는 아파트 등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한 리더다. 그 역시 훌륭한 지도자상으로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사람을 꼽았다.

 하지만 이 같은 리더십은 최소한 대한민국 공직에서는 독(毒)이 되기도 한다. 한때 단체장들이 공직자들에게 걸핏하면 강조한 말이 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주저하지 말고 공격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라"는 것이다. 그 말은 ‘나를 믿고 따르라’는 주문이다. 좋게 보면 창의적인 비전을 앞세운 ‘파격’이지만 제대로 보면 법과 규정을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추진하라는 ‘탈법’을 부추기는 말일 수 있다. 외부에서 생활했던 단체장들이 볼 때 법과 원칙을 앞세워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공직사회의 모습이 여간 답답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해도 거치적거리는 게 부지기수다. 상식적으로 대충 넘어가 빠르게 뭔가 성과를 내면 좋을 텐데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해 답답하기만 하다. 단체장에게는 눈엣가시겠지만 공직사회가 그렇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법과 원칙이 지켜져야 함에도 조급증을 가진 단체장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 앞에 공직사회는 추풍낙엽이다. 공무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임기 중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눈 밖에라도 나면 임기 내내 한직으로 몰리거나 승진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이라고도 한다.

 결국 단체장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우려도 나오지만 강력하게 주문하는 단체장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늪에 빠져든다.

 최근 몇 년간 인천시 감사를 통해 징계가 통보된 공무원 가운데 억울한 이들이 꽤 있다. 단체장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추진했던 사업이지만 시간이 흐른 후 문제가 되면 책임은 고스란히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단체장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다. 그렇다고 책임져 줄 상급자들 역시 이미 퇴직해 억울함을 호소할 곳도 없다. ‘모든 책임을 질 테니 나를 따르라’고 외쳤던 단체장은 정책적 판단을 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책임에서 벗어난다. 그 말을 믿고 따랐던 공무원들만 다치는 꼴이다.

 몇 년 전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근무했던 공무원들이 시 감사 결과에 따라 무더기로 신분상 조치를 당했다. 그 중에는 승진을 앞둔 이도 있었지만 업무를 독려했던 임명직 단체장은 책임을 지지 못했다. 이 같은 일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 인천지역에서 추진되는 많은 사업들이 그렇다. 송도 6·8공구 사업이나 월미은하레일, 뉴스테이 등 우려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늘 상황논리와 법의 괴리에서 일어나는 충돌이지만 피해가 발생하면 선출직이나 임명직 단체장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다. 그저 달콤한 결과물만 보기 때문이다. 결국 책임은 리더십이 아니라 법과 원칙이 지켜질 때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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