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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추석이 머지 않다. 간소화됐다고는 해도 명절 선물 보내기는 마음에 부담이 온다. 받을 분의 취향을 고려하고 과하지 않은 선에서 선물을 고르기가 간단하지 않다. 옷이나 액세서리, 주방 소품 같은 것은 취향이 다르면 버리지도 못하고 남 주기도 그래서 묵혀두는 일이 생긴다. 언젠가 바자회에 받은 선물들이라며 본인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상자에 가득 담아 온 분이 있었다. 정가의 10%도 안 되는 싼값에 처분되는 선물을 보면서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기분 좋게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이 뭘까 고민이 됐다.

 한동안 예쁜 컵이나 스카프 지갑, 장식 소품 같은 내 취향이 반영된 물건을 많이 선물했었다. 집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우리 집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포장도 풀지 않은 선물 상자가 여러 개 있었다. 보낸 분의 정성과 마음을 헤아려 잘 사용했다면 선물은 제대로 쓰임을 받아 고마운 마음을 가졌을 텐데 쓰지 않은 선물은 보낸 분의 정성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먹거리가 무난하겠다 싶어서 제철 먹거리로 선물 종류를 단순화했다. 먹거리는 많다 싶으면 상하기 전에 서둘러 나누어 먹을 수가 있다. 쌓아 놓아 썩히지는 않으니 짐이 되지 않고 재활용코너에 떨이로 내놔서 보낸 분의 정성이 허투루 대접받을 경우도 적을 것 같아서다. 건강식품도 자주 선물로 주고받고 했는데 나만 그런지 식탁 한 모퉁이에 쌓여있는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됐다.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일이 건강을 위해서 규칙적으로 매일 운동을 하세요, 하는 압박만큼 신경이 쓰였다. 이번 추석에도 큰 고민 없이 제철 과일을 주문해 택배로 보냈다. 매장에서 발품을 팔아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는 정성이 덜 들어간 것 같기는 해도 잘 여문 과일의 과즙처럼 달달하고 즐거운 추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기억에 오래 남는 선물이 있다. 몇 해 전 교통사고로 장기 입원해 있을 때 받은 선물이다. 앞으로 인생에서 닥칠 나쁜 일을 미리 겪어서 액땜했다며 행운을 불러다 줄 선물을 내 생각을 하면서 준비했다고 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이면 뭐든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이는 풀밭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아 책갈피에 잘 눌러 말려서 압화 액자를 만들어 왔다.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풀숲을 헤매며 다니고 오랜 시간 동안 상처 없이 곱게 말려 액자에 틀을 잡아 완성한 정성에 감동을 받았다. 사람들이 긴 시간 공을 들이고 마음을 담아 선물을 만들 수는 없기에 그이가 준 선물이 내게 특별했다. 또 하나는 친구가 준 약고추장이다. 친정과 시댁에서 기본 장과 김치는 평생 가져다 먹는 친구였는데 손맛 정갈했던 노인네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을 떠나고 친구는 초로의 나이에 고아가 된 느낌이라며 슬피 울었다. 평생 받아먹기만 했던 손맛의 기품을 재현해 지키는 일이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은혜를 갚는 일이라며 친구가 전통 음식 공부를 했다. 이론만으로 뚝딱 깊은 손맛을 낼 수는 없기에 친구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약고추장을 만들었다. 담근 양이 많지 않아서 작은 유리병에 담아온 고추장은 맛이 꽤 괜찮았다. 책으로 익히고 장맛 좋다고 소문난 사람들을 찾아가서 배운 방식을 참조하고 어깨 너머로 본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해 내어 만든 친구는 첫 탄생한 약고추장 시식의 영광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고마워 조금씩 보약처럼 아껴서 먹겠다고 했다. 행복한 선물이다. 형식적이지 않은 선물을 고르기가 어렵다. 선물을 받은 사람이 진심 기뻐할 선물은 더 어렵다. 그렇더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라는 말처럼 마음 담긴 선물로 행복한 추석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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