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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취재기자로서의 삶은 고단하다. 수습시절, 한 선배와 밥을 먹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취재)기자는 3D 업종에 해당한다." 당시에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몸소 체험하면서 알게 됐다.

어떤 사안을 알아가는 과정은 쉬울 리 없다. 공권력과 같은 강제권이 없기에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별의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때론 자존심을 버려야 하는 더러운(Dirty) 순간도 온다. 일은 무난한가. 쪽잠에 의지하며 몇 시간 자지 못한 채 새벽에 나오고,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날이 일상일 정도로 힘들다(Difficult). 위험(Dangerous)은 압축하고 압축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사 한 줄 잘못 썼다간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기자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위험이다.

또 하나는 잘못된 기사 한 줄로 남을 해칠 수 있다. 타인에게 돌아가는 위험이다. 그래서 항상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얻어진 팩트는 기자의 생명줄과도 같다.

물론 취재기자는 ‘사람’이다. 24시간 365일 어떻게 항상 3D 위에 놓여 있겠는가. 경험이 쌓이며 약간의 완급조절은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요령’을 터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재 과정 중 여러 상황에 직면한다. 욕을 듣기도 하고 위협을 받기도 한다. 때론 인격모독적인 발언도 참아야 한다. 뿐만 아니다. ‘검은 유혹’의 손길이 올 때면 벗어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래도 이런 사례들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직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하나가 ‘기자님이 해보실래요’다. 즉, ‘네가 해 봐라. 너라면 별수 있냐’는 식이다. 기자의 ‘놈 자(者)’자 뒤에 ‘님’이라는 황송한 단어가 붙는 것도 반감이 치고 올라오지만 사안을 벗어나 물타기를 하려는 대화 방식은 더욱 미치게 한다. 논점을 벗어났을 뿐 아니라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 식의 ‘입장차이’를 활용한 궤변은 잘잘못을 대체할 수 없다. 변명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일상에서의 우연은 이보다 더한 짜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휴일 어느 날이었다. 오랫만에 사우나를 가기 위해 속옷과 양말, 갈아 입을 옷을 챙긴 채 집을 나섰다. 그런데 가는 길이 허전했다. ‘아차!’ 휴대전화를 두고 온 것이다. 잠깐 없어도 별일 아니었지만 습관이란 무섭다. 차를 돌려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항상 가던 사우나에 도착하니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어두웠다. 그때 한 아저씨가 다가왔다.

"여기 지금 공사중이에요." 아침에 샤워하지 못한 찝찝함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다른 사우나를 갈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습관은 무섭다. 리모델링이 끝난 뒤 다시 오기로 마음 먹고 집에 가서 샤워나 할 참이었다. 집에 도착해 욕실에 들어가 꼭지를 틀으니 ‘콰쾅콰콰쾅’하는 굉음만 들린다. ‘어라?’ 알고 보니 아파트 물탱크 청소를 위해 오후까지 단수(斷水)란다. 순간 폭발했다. 평온한 휴일의 시작을 이렇게 해야 하다니. 허탈한 짜증이 쏟아졌다. 그러다 이내,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직업적인 온갖 아카이빙(archiving) 속에서도 가급적 분을 삭이려 했던 터다. 딱히 꼬집어 한 가지 이유를 들 수는 없지만, 나이가 차 가며 관용 혹은 아량과 같은 단어에 더욱 마음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우연에 우연이 더해진 이 코미디 같은 직면(直面)에 화를 내고 말았다. 일은 오만 가지 조각들을 덧붙여 합리화하더니 예상치 못한 실망감에 무너졌다. 스스로가 참, 못나 보였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거다. 넘어져 먼지를 뒤집어 쓰는 순간이 오더라도 때론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다시 갈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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