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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장
지도자가 뛰어난 인재를 어떻게 불러내어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지 좋은 사례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이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량의 모습이다. 제갈량이 없는 유비는 무력한 존재였다는 점에서 이 얘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중국에서 역사의 인물 유비를 평가하는데 이 대목은 단연 압권이기도 하다.

 일본 메이지유신의 성공을 말할 때 료마와 같은 선구자의 예를 들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에노모토다. 그는 원래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사령관으로 끝까지 천황파에 저항한 조적(朝敵 : 조정의 역적)이었다. 홋카이도 하코다테에 성을 쌓고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항복했을 때 누구나 처형되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남았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에노모토는 이후 해군 장군에 오르고 외무대신 등을 네 차례나 역임했다. 천황파에 맞서 싸운 골수 막부파의 장수를 용서하고 기용해 능력을 발휘하게 했던 것이다.

 메이지유신이 성공한 이유는 여럿 있겠으나 이렇듯 반대파의 인재를 받아들인 점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이고 다카모리도 좋은 예다. 그는 가고시마에서 메이지 정부의 급진적 서양화 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끝내는 할복했다. 그에게 훗날 메이지 천황은 사면하고 제3위에 추증했다. 오늘날 가고시마뿐만 아니라 도쿄 우에노 공원 입구에 그의 동상이 서 있어 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는 삼국지의 무대처럼 체제가 무너진 상태도 아니려니와 메이지유신처럼 막부가 무너지고 신체제가 들어선 것도 아니다. 촛불혁명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헌법 절차에 따라 새 대통령이 투표로 결정되었고, 국민의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에서 국무위원을 비롯해 헌재소장, 대법원장 등 국가 인재들에 대한 신상 털기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의 참담함은 간단하지가 않다. 인재 찾기가 아니라 인재를 차단하는 제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재는 제갈량처럼 일찍이 고아가 돼 독학으로 주경야독했다거나 처가가 실패한 권력자의 악명 높은 외척이었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제갈량의 처이모는 유비를 죽이려 했던 유표의 후처 채부인이고, 역시 유비를 죽이려 했다가 나중에 조조에게 붙어 적벽 싸움에서 적이 되었던 채모는 처외삼촌). 아니 청문회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스스로 물러났어야 했을 것이다. 에노모토의 경우는 두 말할 나위조차 없지 않을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재를 원하면 귀기소장(貴其所長 : 장점을 귀히 여긴다), 망기소단(忘其所短 : 단점을 눈감아 준다)해야만 가능하다. 우리처럼 과거 행적을 마치 삼류 흥밋거리로 만들어 망신을 준다면 어떤 인재가 나설 것인가.

 물론 능력과 자질 검증은 꼭 필요하다. 무능력한 비전문가가 권력자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국무위원이 되거나 국가의 주요 직책에 앉거나, 국가 이념을 부정하는 인물이 고위 관료가 돼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는 건 재앙이기 때문이다. 전 정권에서 그런 인물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국격을 한없이 추락시킨 사례는 차고도 넘치지 않는가. 결국 과거의 행적을 통해 걸러지는 과정이 전제돼야겠으나 미래를 위해 과연 어떤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인물인지 검증하는 것이 진정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인재가 발굴되지 않는 나라에 밝은 미래가 있을까. 그리고 인재는 대개 현실을 비판하고 반항하는 사람들 속에 많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자기의 말을 잘 듣고 충성도가 높다는 이유로 발탁하면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 체험하고 있는 현실의 교훈도 있고.

 이제 청문회가 끝났다. 하지만 얼마 있으면 재개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품위 있는 인재가 관직에 연연해 가문의 망신, 인격 살인과 명예 훼손, 심지어 자녀들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걸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비전을 당당히 설명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니, 지역 홀대론이니, 적폐 대상이 적폐 청산이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리당락에 몰두하기에 앞서 제갈량이나 에노모토 같은 인재들을 어떻게 찾아내 적합한 자리를 주고 능력 발휘를 시킬 것인지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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