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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인 가평군 기획감사실장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개최로 세계적 재즈의 메카로 떠오른 가평 자라섬은 명칭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오래전 이 섬은 이름도 없는 갈대와 잡목이 우거진 모래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해방 후 중국사람 몇 가족이 이 섬으로 유랑해와 수박이나 참외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가평읍내 사람들은 이 섬을 중국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섬은 화성섬, 암반섬, 남이본섬 등 여러 이름으로 회자되다가 1986년 가평의 지명위원회가 중지를 모아 자라섬이라 명명했다. 왜냐하면 이 섬이 자라목이라 불리는 늪산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 자라섬은 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리면서 특히 젊은 층으로부터 음악의 섬으로 불리고 경춘선 전철역 중의 하나인 가평역을 자라섬역으로 변경할 정도로 자라섬의 브랜드 가치는 무척 상승했다. 가평에서 태어나 평소 자라섬에 대한 소중한 추억를 간직하고 있는 나는 일찍 공직에 입문한 이후 2004년 가평군 문화관광과장이라는 직책으로 비로소 자라섬과 다시 만나게 된다.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의 성공적 정착과 2008년 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 개최를 위해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가평군 전현직 팀장과 담당자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 후배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그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본인은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초창기 1회부터 3회까지 세 번을 치르는데 그 중에 두 번을 내 책임하에 치렀다. 그때 나는 비로소 자라섬에 대한 소중한 가치와 애착을 갖게 됐다. 2005년 봄, 자라섬을 가꾸는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자라섬은 현행법(하천법 등)상 하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등 시설물 입지가 금지돼 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자라섬에 이동 및 임시 존치 시설물을 설치해 공간을 활용하고 자연을 미화해 섬을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현재 자라섬에 많은 재즈 마니아들이 찾아오고 캠핑족들이 방문하는 등 대한민국 수도권 대표 휴양공간이 되었지만 가평군에서 구상하는 자라섬 종합개발 등 다각도의 개발 계획은 관계법상 여전히 쉽지 않은 상태이다.

2008년 세계캠핑캐라바닝 세계대회 유치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영국을 비롯해 10개국 상임이사들이 가평 자라섬을 방문하게 된다. 그들 모두는 자라섬을 감싸고 흐르는 북한강을 강인 줄 모르고 이구동성으로 "이 산중에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lake)가 있군요"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방문단 중 강(river)이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후 나는 자라섬 발전계획 개발 논리를 펼 때마다 자라섬을 섬으로 개발하지 말고 자라호수로 개발하자고 주장했다. 2004년 가을 재즈페스티벌 때는 코스모스 들판을 만들어 보았다. 2005년 이듬해도 중도(中島)에 코스모스 들판을 기대했지만 다른 야생 들풀에 묻혀서 코스모스는 듬성듬성 피어 코스모스 밭은 누더기처럼 되어 버렸다. 재즈축제는 다가오고 자라섬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하는데 날이 갈수록 어깨가 무거웠다. 무대 주변과 마땅히 조화를 이룰 화초류를 찾지 못했다. 고민에 빠져 있을 때 화원을 운영하는 주민으로부터 100일 안에 피는 꽃이 메밀꽃이라는 조언을 받고 축제 100일을 앞두고 메밀의 고장인 평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메밀씨 두 가마를 매입해 섬 주변에 파종하게 된다. 새싹은 잘 자라 마침내 100일이 지나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짜에 맞춰 백옥같이 하얀 메밀꽃이 만개했다. 그야말로 가을밤 재즈 선율이 하얀 메밀꽃과 하모니 아닌 하모니를 이뤘다.

자라섬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 더 나아가 세계만민에게 행복한 추억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본인은 자라섬에 대한 추억을 반추하며 자사모(자라섬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함께 자라섬에 대한 진정한 겸손과 바람을 글로 정리해봤다. 2017년 10월 20일부터 3일간 제14회 자라섬 국제즈페스티벌이 열린다. 또 한 번 자라섬이 떠들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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