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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꽃은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꽃은 져도 향기만큼은 널리 퍼져나갈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을 보고 동시에 향기를 맡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꽃이 전해주는 고운 향기에 취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그윽한 미소를 머금기도 합니다.

 꽃은 보입니다. 그러나 향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맡아야만 합니다. 꽃은 내가 가진 지위고 학식이고 명예입니다. 나의 전문성입니다. 그러나 향기는 그 전문성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바로 인격입니다.

 꽃에서 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봅니다. 모두가 예쁘다고 하는 꽃을 찾아갔지만 그 속에 꿀과 향이 없다면 나비와 벌은 얼마나 허망할까요?

 사람은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을 중심으로 어떤 역할을 맡습니다. 그러나 그 역할을 세상 사람들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인격이라는 향기가 고와야 인간관계가 잘 이루어집니다. 특히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향기는 그 파괴력이 무척 큽니다. 그런데 만약 그 향이 역겨운 향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보검에는 칼집이 있지만 망나니의 칼은 칼집이 없습니다. 죄인을 응징하는 칼이기 때문에 그 칼을 쓰지 않을 때조차도 공포감을 주어야 하고, 그래서 칼집이 필요없을 겁니다.

 보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칼이고, 망나니의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칼은 반드시 칼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보검 역시 날카로운 칼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주어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칼이 지위이고 능력이라면, 칼집은 바로 그 칼을 쥔 사람의 인격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보검으로 보여도, 칼집인 인격이 수반되지 않는 보검은 망나니의 칼과 다를 바 없겠지요.

 두 명의 주부가 아주 비싼 사과를 샀습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사과라서 무척 비쌌습니다. 한 주부는 깨끗한 그릇에 사과를 담아 가족들에게 주었지만, 다른 주부는 식구들이 이미 사용한 그릇에 사과를 담아 주었습니다. 이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무리 비싼 사과라고 해도 사과를 입에 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귀한 사과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담아 전하는 그릇을 보고 사과를 평가하곤 합니다. 사과는 꽃이고 칼이지만, 그것을 담아 전하는 그릇은 바로 향기이고 칼집입니다. 사과는 본질이지만 그릇은 수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수단을 보고 본질인 사과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인격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뇌 과학자들은 뇌 속에 ‘거울뉴런’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것의 발견으로 인해 ‘공감’이라는 개념을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는데요. 예컨대 누군가가 슬퍼서 울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가 기뻐서 함박웃음을 웃으면 ‘나’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것이 거울뉴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능이 낮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행동실험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자신이 먹이를 집을 때마다 동료 원숭이들에게는 전기충격이 가해지게끔 해놓은 탓에, 먹을 때마다 동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듣게 된 원숭이는 무려 12일 동안이나 먹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동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이미 갖고 있는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정치인들의 거친 언사를 보고 들으면서, 남 탓을 하며 칼을 휘두르고 있는 망나니의 칼이 자꾸만 연상됩니다. 그들의 언사가 뉴스를 통해 국민에게 전해질 때, 거울뉴런으로 인해 우리도 똑같이 거칠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내 탓’을 하면서 스스로의 잘못을 발견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 자신의 고운 향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고운 향기만 정성껏 만들어 퍼뜨리면 나비는 저절로 찾아올 텐데 말입니다. 사랑을 달라고 외칠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면 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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