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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9월 8일 서울중앙지검은 ‘국정농단 사건 등에 대한 일련의 영장기각 등과 관련된 서울중앙지검의 입장’이라는 자료를 냈다. 이를 통해 "우병우·정유라·이영선·국정원 댓글 관련자·KAI 관련자 등 주요 국정농단 사건을 비롯한 국민이익과 사회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면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전했다. 이러한 공개적 비판에 대해 법원은 유감을 표명했고, 재야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실 구속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검찰과 법원이 갈등을 빚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왕왕 있어온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구속영장이란 ‘피고인 또는 피의자를 일정한 장소에 구인(拘引)하는 영장’을 말하며, 강제수사를 위해 활용된다. 헌법 제12조 제3항 본문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사전영장주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한편,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은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인신 구속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게 되므로 개인의 신체적·심리적 고통뿐 아니라 가정적·사회생활적인 면에서도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구속영장 발부는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영장 발부를 너무 소극적으로 행하다 보면 범죄자의 인권 보호에는 충실하게 될지 모르지만 범죄를 밝혀 악을 징벌해야 하는 검찰의 기능은 크게 제약된다. 결과적으로는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통한 ‘정의 구현’에 심대한 차질이 초래된다. 죄를 짓고도 영장이 기각돼 뻔뻔스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과연 이 나라에 정의가 있느냐"며 혀를 끌끌 찬다. 더욱이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정상참작 등을 이유로 해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받은 후 아무런 반성도 없이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법은 가해자의 편’, ‘유전무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사법 질서 전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면서 많은 시간·비용을 들여 수사와 재판을 하고도) 범죄자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벌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 ‘범죄자의 인권 보호 필요’와 ‘공공이익 보호의 필요’를 잘 비교 형량해 균형있게 판단해야 할 것이고, 공익 보호의 측면에서 영장 발부가 ‘구체적 타당성’을 갖도록 배려함이 필요하다.

 예컨대 국기 문란, 권력형 비리, 사회지도층의 범죄혐의를 단순 절도혐의와 동일한 잣대로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며, 범죄혐의의 사회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70조 제2항도 법원이 구속사유를 심사함에 있어서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최근 "범죄혐의는 소명되나 피의자의 신분과 지위 등을 고려할 때 도망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추선희 전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김재철 전 MBC 사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데 대해 비판여론이 나오는 것이 무리한 것 같지 않다. 또한 2013년 검찰의 ‘댓글수사’에 대비해 가짜 사무실을 꾸리는 등 국정원의 실무적 대응과정에 관여했던 변호사와 검사가 최근 줄지어 자살한 사건을 보면서 "그들을 긴급히 체포 또는 구속했더라면 자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자살로 인해 진실마저 묻히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갖는 국민이 많다. 법원이 중대사건에 있어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 유무’를 너무 형식적·획일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은 것이다. 한편, 조만간 검찰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불러 추가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라 한다. ‘법꾸라지’라 불리는 그가 또다시 구속을 피하게 될지 세인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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