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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얼마 전, 청라호수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우리나라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청라호수공원의 4km 순환 산책로를 돌며 초대형 음악분수와 호수를 감싸는 초고층 아파트단지를 보았다. 아파트에서 호수공원을 내려다보는 게 더 근사하겠다는 생각을 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의 역 위치를 표시한 조형물을 지나쳤다. 청라국제도시의 주민 염원을 담은 걸까?

 호수공원을 산책하면서 청라신도시 일원의 생경한 분위기를 한 일행이 전했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연결되지 않아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은 주민 대부분이 서울로 출퇴근한다는데, 그들은 스스로 인천시민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게 아닌가. 삽도 뜨지 않은 서울지하철 7호선의 연장을 기다리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데, 서울로 빠르게 연결하겠다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을 학수고대하는 송도국제도시 주민의 생각도 비슷한 게 아닐까? 초행이라 그랬을까? 비 내리던 그날, 시내버스와 지하철로 연수구의 집까지 이동하는데 두 시간이 필요했다.

 북성포구에서 화수부두를 지나 만석부두로 이어지는 해안에서 이글거리는 낙조를 바라보는 시간을 누린 적 있다. 노을이 근사한 바닷길을 걷자니 북항 너머 청라국제도시가 보인다. 송도신도시와 비슷한 아파트 숲이다. 그리 멀지 않은데 승용차가 아니면 꽤 돌아야 찾아갈 수 있다. 남미의 땅 넓은 국가는 자국의 다른 도시로 빠르게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공항을 이용해야 편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민자의 후손인 자신을 남미인이 아니라 유럽 또는 북미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여태 많다고 한다.

 인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이후 평일에도 인천대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이 늘었다. 그 중 노인이 성큼 늘었다. 승용차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인천대공원을 자주 찾을수록 숲 사이를 천천히 걷는 노인들의 건강이 나아지는 건 분명할 텐데, 2호선 개통 덕분에 회의 마치면 발길 돌리기 바빴던 서구의 친구들과 긴 시간 막걸리 기울일 여유가 늘었다. 지하철은 그렇듯 단절된 인천을 편안하게 연결하는데, 청라신도시로 주소를 옮긴 친구들은 소원해졌다.

 연수구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신포동이 낯설다. 수인선이 최근 신포동을 가깝게 이었지만 훌쩍 자란 아이들은 북성포구가 매립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제 친구와 만석부두에서 낙조를 바라보는 기쁨을 누리려하지 않는다. 아파트단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은 지역을 어떻게 생각할까? 연수구에 인천의 기억은 사라졌다. 피부와 만나던 갯벌은 몽땅 매립되었고 제방 밖의 바다는 정물일 뿐이다. 연수동이나 논현동이나 똑같다. 국제도시라는 자부심을 비교하는 청라와 송도도 마찬가지다. 디자인과 자재가 다를 뿐, 근본은 아스팔트와 철근 시멘트 콘크리트다.

 연수구에 정착한 이후 아이와 신포동을 간 적이 없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인데, 젊었을 적 친구와 뒹굴던 곳인데, 그동안 그리 바빴나?

 아파트 가격이 저렴하기에 주민등록을 잠시 옮긴 청라신도시 주민들은 지역 따위에 관심이 없다. 그저 서울까지 빨리 연결하는 아스팔트를 원하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가까운 녹지와 호수가 근사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검단과 장수를 잇는 도로가 무산돼 인천의 ‘S자 녹지축’이 살아 남았다. 거주하는 외국인이 많지 않은 청라신도시에서 지역을 거부하는 서울시민들은 외부인인데, 그들을 위해 그 녹지축이 사라질 뻔했다. 크고 작은 도로와 각종 개발로 이미 절단되고 훼손된 녹지축을 되살리려는 의지가 인천시에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없는데, 항구에서 서구까지 인천을 좌우로 나누던 경인고속도로가 일반화됐다. 지역으로 찢어진 인천은 이어질 것인가? 그 과정을 가슴 뛰며 공유할 인천시민은 어디에 있는가?

 중앙정부와 거대자본의 입김으로 개발, 확장된 인천은 어느 새 300만 인구로 늘었지만 시민들은 지역의 정서를 공유하지 못한다. 지역을 이을 씨줄과 날줄이 충분치 않다. 인천의 기억을 물려받지 못한 아이는 청라국제도시에 사는 친구 만나러 어디로 갈까? 서울에 약속 장소를 정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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