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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 송이버섯 같은 초가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던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 십정동이 본격적인 철거를 앞두고 있다. /사진=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28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십정2구역. 기업형임대주택(뉴스테이) 사업을 둘러싼 ‘소용돌이’가 지나간 곳이다. 현장에서는 인부 10여 명이 공가 처리가 끝난 구역부터 부분 철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십정2구역 기업형임대주택 사업을 위해 5천억 원대의 지급보증을 승인한 날이다. 정부가 총 사업비의 절반을 보증한 것이다. 민간사업자의 투자처 물색이 한결 수월해졌다는 의미다.

집 주인과 세입자가 머물던 3천여 가구의 70% 이상은 빈집인 상태다. 이곳 주민들은 정든 동네를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근 십정2동과 간석동, 구월동 등지에 전·월세방을 어렵게 구해 세간살림을 옮겼다. 2022년 1월 새 아파트로 입주할 때 까지 앞으로 3년 간 ‘남의 동네’에서 지내야 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총 1천만 ∼3천만 원의 자산평가가 결정된 쪽방촌 홀몸노인들은 권리가액의 60%를 무이자로 대출해준다고 해도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언덕배기에 사는 정 씨 할머니가 대표적이다. 딱한 처지를 보다 못한 자식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겠다고 나선 집은 그나마 다행이다. 빚을 낼 엄두를 못내거나 현금청산해도 단칸방 하나 구할 수 없는 노인분들은 아직도 이 동네에 산다.

내재산지킴이 사람들도 그렇다. 이들이 사무실을 꾸린지도 1년 4개 월이 흘렀다. 지난해 9월 3.3㎡당 평균 400여만 원이 나온 이 구역 재산평가에 집단 반발해 만든 사무실이다. 3만∼5만 원씩 5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의 후원을 받아 사업무효 소송 등을 아직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사무실이 위치한 십정1동 309-138 빨간 벽돌집도 내일 모레까지 쓰고 이제는 비워 줘야 한다. 인천도시공사와 내재산지킴이가 올해 말까지만 쓰기로 약정해서다. 사무실은 박경희(54) 총무가 늘 지키고 있다. 올 한 해 실거래가 보상과 뉴스테이 전면 철회를 주장하며 매주 1회 집회와 회의를 했다. 투쟁의 열기가 가득했던 이 공간은 어느 새 ‘동네 사랑방’이 됐다.

아직 살림살이가 좀 남아 있는 이곳에 와서 이사를 못간 주민들이 수저며, 그릇이며, 믹스커피며, 이것 저것 빌리러 온다. 그러다 이날 사무실을 찾은 김 모 아주머니처럼 금새 눈시울을 붉힌다. "졌다, 졌어. 내 두 손 두 발 다들고 나간다는 데도 이렇게 까다롭게 구나. 정말 속이 터진다" 공가확인 절차가 연로한 아주머니 혼자서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쏟아 낸 말이다.

박 총무도 권리가액의 60%를 대출받지 못해 아직 이사를 못가고 있다. 30년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단독주택 일부에 무허가가 있어 은행대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이 구역 새 아파트의 분양권에는 5천만∼6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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