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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담백하고 명료하다. 수(數)의 속성이다. 철학적 사유와 현세적 분석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수는 그 자체의 직진성만으로 충분하다. 수의 흡입력은 그 명징성에 있다. 보태거나 덜어내지 않을수록 수의 절대성은 오롯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수에다 자꾸 의미를 덧칠한다. 줄이고 늘려 상대성을 마구 잡아당긴다. 가치로 수를 치레하고, 해석으로 그 값을 분장한다. 간단하고 분명한 수의 본성을 흩어버리고 그 자리에 왜곡하고 변주한 수로 채운다.

 정치색이 진한 세속일수록 이런 흐름은 더욱 짙다. 얼마 전 인천시는 한 토막의 수를 내놓았다. 지난 연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지역소득(잠정)’의 내용 일부를 베낀 것이었다.

 그 자료의 끄트머리로 풀어낸 유정복 시장의 해석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이른바 ‘골든크로스’이다. 인천이 50만 명이 더 많은 부산을 고꾸라트리고 서울에 이은 대한민국 2대 도시로 우뚝 선다는 ‘희망가’이다. 그것도 당장 올해 안에 말이다.

 유 시장은 통계청의 일부 지표 내 수치를 빌려다가 ‘꿈의 노래’의 상수(常數)로 등장시켰다. 이를테면 경제성장률과 지역총생산, 지방세 규모 등이다. 수가 지닌 선명성에다가 통계청의 공신력이 합쳐져 유 시장이 이끄는 ‘2대 도시, 인천’은 자명한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인천이 3.8%로 1.7%인 부산을 저 밑에 두고 있다. 지역내총생산은 80조8천억 원으로, 81조인 부산을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방세 규모 역시 3조8천200억 원으로, 부산(3조9천100억 원)과 엇비슷하다.

 이 수치가 1년 전의 것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부산과의 골든크로스는 ‘예견된 위업(偉業)’일일 법도 하다. ‘대한민국 제2의 부러운 도시’로의 창세(昌世)는 ‘부채도시’에서 인천을 건져낸 유 시장의 치적과 치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유 시장은 부산과의 골든크로스 잉태 역시 재정건전화라는 화수분에 방점을 둔다. "3년 전 13조 원이 넘는 부채로 하루 이자만 해도 12억 원이었던 전국 유일의 재정위기 주의단체에서 인천을 구했다. 지난 4년간 1조8천600억 원의 교부세를 안겼다. 지난 4년간 그전 4년보다도 3조 원 가까이 국고보조금을 더 얻어냈다. 리스와 렌털 차량을 끌어들여 1조 원에 가까운 재원을 만들어 냈다." 등등.

 유 시장이 3조7천억 원의 빚을 갚아 39%에 달했던 채무비율을 21%로 떨어뜨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계청 자료로, 그것도 일부 지표를 차용해 ‘골든크로스’ 운운하고 ‘제2도시로의 부상’까지 들먹이는 일은 억지스럽다 못해 어설프기까지 하다. 목전에 둔 6·13 지방선거를 겨냥한 의도적인 확대재생산의 측은감도 묻어난다.

 통계청의 ‘2016년 지역소득(잠정)’에는 경제성장률과 지역내총생산 등의 지표만 있는 게 아니다. 지역총소득과 개인소득 등 1인당 지표, 성장한 업종 등 경제성장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인천의 경제성장률 3.8%를 이끈 업종은 건설업(19.6%)과 운수업(8.5%)이었다. 반대로 같은 시기 부진업종은 사업서비스업(-1.2%), 문화·기타서비스업(-1.3%)이다. 인천이 과연 부산을 이길 수 있는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를 견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1인당 개인소득은 쏙 빼놓고 인천의 현실과 미래를 재단했다. 인천은 1천705만4천 원으로 부산(1천760만8천 원)보다 55만4천 원이 적었다. 1인당 개인소득만으로 봐서는 꼴찌인 광주(1천667만2천 원) 다음이다. 알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부러운 도시’를 자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수에 사사로움이 끼면 수로서 의미를 잃는다. 그 수에는 희망과 미래를 얹을 수 없다. 왜곡된 수에는 일그러지고 비틀린 함정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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