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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승연 인하대 교수
2018년 새해 벽두, 드디어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했던 일들을 돌아보면 무척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에게 선진국의 조건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양한 답변들이 나올 것이다. 3만 달러 이상의 1인당 국민소득, 정치적 민주화, 사회적 질서 유지, 문화의 융성 등. 이 모두를 종합한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네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일류국가가 될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경제적 측면을 보자. 우리나라는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실현한 나라다. 유럽이 200년 걸려 이룩한 산업화를 미국이 100년 만에 이뤘고 일본이 50년 걸렸다면 한국은 30년 만에 달성했다.

이러한 압축성장의 과실은 매우 달콤했지만, 압축으로 인해서 다른 제반 여건이 따라오지 못한데서 오는 부작용 또한 컸다. 그것이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로 나타났으며 그 후 재벌개혁, 빈부격차, 비정규직 문제 등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치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될 자격을 갖춰 왔다. 요새 영화 ‘1987’이 유행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 대학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된 6월항쟁은 우리에게 대통령 직선제 등 많은 정치적 민주화를 가져다 줬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한열, 박종철 열사와 함께 대학시절을 보냈던 필자도 그 시절 많은 고뇌와 희망 속에 우리나라의 변혁을 목도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물론 아직도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정치권, 개헌 등 과제는 많지만, 오늘날 우리의 정치 민주주의 수준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문화 측면에서도 대한민국은 짧은 시간에 많은 성과를 거뒀다. 한류로 상징되는 우리 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 등 세계 속에서 그 역동성과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현대 대중문화의 확산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더 다듬어 세계에 알려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일들이 현실화 된다면 우리 문화는 유럽과 미국 등 앞선 선진국들의 문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난 기간 대한민국은 경제, 정치, 문화라는 핵심 영역에 있어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인 사회 영역에서는 어떠한가? 과연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의 수준에 와 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많은 선진국 사회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하나는 사회를 지탱하는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는 법과 제도, 시스템이 포함된다. 법과 제도는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국민행복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선진국 사회의 또 하나의 특징은 높은 국민의식이다. 이는 국민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평소 타인을 배려하는 의식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먼 과거의 것을 들추지 않고 최근 일어난 제천 화재참사를 들여다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선진 사회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사고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지 않았고 수많은 자동차가 불법으로 주정차돼 있어 소방차 접근이 어려웠다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스포츠센터 건물의 구조인 필로티 공법이 화재나 지진에 취약하다는 것은 이전부터 누차 지적되었던 것이다. 또한 화재 진압 초기에 소방대원들이 지참한 무전기가 먹통이어서 2층 사람들을 먼저 구조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듣지 못했다니 할 말을 잊게 한다.

매번 반복되는 대형 참사의 대부분은 인재(人災)이다. 그 근저에는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공공기관의 능력과 의지 부족, 안전사회에 필수적인 시스템 미비, 국민들의 공공의식 부족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 정치, 문화가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더라도, 국민들의 행복과 안전에 직결되는 사회 수준이 높지 않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의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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