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한반도에 북극 한파(寒波)가 휘몰아 친다. 영하 21℃까지 체감온도가 떨어졌다. 바깥 활동을 하기에는 버거운 겨울 날씨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며 혹한을 이겨내는 시민들을 볼 때마다 ‘희망(希望)’이 보인다. 이들에게 한파는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다. 오로지 삶이 중요하다. 노후를 위한 것이든, 자신과 자식을 위한 것이든,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한다.

25일 오전 인천시 남구 숭의동 일원. 이곳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신모(64·여) 씨는 한파가 두렵지 않다. 늘 해왔던 일이지만 등과 발에 핫팩을 붙여가며 칼 바람과 싸우고 있었다. 올해로 16년째 더위와 추위를 마다 않고 1년 내내 야쿠르트 배달을 하는 신 씨지만 최근의 한파는 낯설다. 그는 "요즘처럼 시린 날씨가 연일 이어진 것은 처음인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신 씨의 아들 두 명은 모두 가정을 꾸려 따로 살고 있다. 배달 일은 아들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 스스로 노후자금을 마련하고자 시작했다. 매일 판매한 물건 값의 25% 가량을 수수료로 받는 신 씨의 한 달 수입은 평균 170만 원 정도다. 가족 생각에 힘을 내 빌딩 계단을 오르지만 발가락까지 어는 추위에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신 씨는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자는 약속으로 남편도 운전 일을 하며 각자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날씨가 춥긴 하지만 조금 더 힘을 보태려고 한다"고 웃어 보인 뒤 다음 목적지로 바쁘게 움직였다.

공사장의 소음도 잦아든 이날 오후 중구의 한 건설 현장. 점심 식사를 끝내고 난로 곁에 모여 불을 쬐는 인부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부쩍 일이 줄어 서다.

인부 황모(66) 씨는 "오늘은 어떻게든 일을 받아 나오긴 했지만 당장 내일이 걱정"이라며 "최근에는 인력사무소에도 일이 뜸해 많아봐야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황 씨의 하루 일당은 10여만 원이다. 하루 평균 5~6시간을 야외에서 추위와 싸워야 받을 수 있다. 황 씨는 현장에서 장갑을 배급받지 못하는 일이 많아 항상 사비로 구매한 장갑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사용한 장갑을 깨끗이 빨아 다음날 다시 사용한다. 황 씨는 "사정이 넉넉치 않아 딸의 결혼을 2년 후로 미뤘는데, 없는 형편이지만 적은 액수라도 보태주고 싶어 일을 계속하려고 한다"며 "날이 어서 풀렸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꿀 맛 같은 휴식시간이 끝난 후 황 씨는 안전화 끈을 동여 메고 다시 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서운 추위에 과일마저 얼어 버려 장사를 망친 이들도 있다. 남구 용현5동 토지금고시장 노상에서 과일을 파는 김모(72) 할머니는 평소보다 뚝 떨어진 매출에 울상이다. 귀마개와 목도리, 장갑 등으로 몸을 감싸도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마음이 더 시리다. 김 할머니는 "팔려고 내놓은 과일이 얼어 버려 어제 오늘 몇 개 팔지도 못했다"며 "이런 추위가 계속되면 당분간은 장사하러 나오지도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김 할머니는 한파가 두렵지 않다. 내일은 더 많은 손님이 자신의 맛있는 과일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김태형 기자 kt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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