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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훈 경기본사 경제문화부장
이번 글 역시 앞서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워낙은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경기문화재단의 문제를 거론하려 했고, 형식도 머릿속으로 얼추 맞춰놨으나 다른 문제로 기사가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글마저 재단 이야기라면 자칫 오해 아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현재도 취재 중인 기사에 자칫 진정성을 의심 받지는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 지역사회, 지역이기주의는 아닐까 하는 지역에 대한 화두다. 그런데 십여 년간 지역기자로 활동하던 인간이 갑자기 지역이 화두라는 게 아이러니하게 비쳐졌다. 사정은 이렇다.

 한 달여 전 2017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서울 강남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때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던 화두가 떠올랐다. 그게 바로 지역이다.

 지역기자로 활동하면서 내내 지역은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해 왔다. 혹여 그것이 종내에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닐까, 아니라면 진정한 지역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를 들면, 흔히 중앙지 혹은 전국지라고 하는 신문을 보라. 하루 삼십 몇 페이지에 혹은 사십 몇 페이지에 달하는 지면에 서울 외의 뉴스는 두세 페이지, 많아야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이를 근거로 봤을 때 너무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에 우리나라가 길들여져 있다. 그렇다면 지역기자로서 지역에 대한 시각은 어때야 하는 것인가.

 이때 당시 한 지인이 그에 대한 답을 주겠단다. 축약하면 단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의 고민이란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그런 고민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단다. 서울 사람 길을 잡고 물어 보란다. 물론, 수원 사는 사람이 부산 사는 사람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 비유였다면 정말 오해였겠지만 당시 대화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되물었다. 근거 혹은 논리가 무엇이냐. 그런게 뭐 필요하냐는 반응이다.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서울 사람들은 그런 관념이 없으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놓는 주장이란다. 즉, 잘 사는 곳이 서울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지역을 외친다는 뉘앙스였다(아니라면 사과합니다).

 이때 확실해졌다. 지역사회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님을. 그 주장을 서울 안으로 끌어 들인다면 서울 또한 지역이 있다. 경기도가 시·군 단위로 나뉘듯, 서울 또한 구 단위로 나뉜다. 그렇다면 강남을 포함해 순위별로 소위 잘 사는 지역이 있을 터다. 강남과 먼 발치에 있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서울 사람들 생각은 어떠한가.

 다시 돌아와 서울이 중앙 또는 전국을 대표한다는 의미는 결국 이거다. 인구가 많다? 대한민국 전체보다는 적다. 땅 혹은 면적이 크다? 이도 아님은 자명하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남의 중심? 이 또한 지도를 펼쳐 보면(지정학적으로) 아니다.

 종내는 이렇다. 인구밀도가 높다. 즉, 사람과 사람이 맞닿는, 치대는 정도가 높다. 자연스레 거래가 활발해진다. 거래가 활발해진다는 건 경제적 활성도가 높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논리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서울만 자본주의가 아니다. 지역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만 편중돼 있다. 이 문제가 지역에 대한 고민의 시발이다.

 비유를 들자면 또 이렇다. 어느 한 곳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치자. 그리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이들에게 기부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 차이는 뭘까. 물론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욕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형편이 좋지 않더라도 그냥 그대로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형편이 좋은 사람에게 조금 나누라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형편이 좋은 사람에게 조금 나누라 하는 것은 욕할 만한 일인가.

 지역에 대한 고민은 더불어 잘 살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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