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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용도가 없어서 평소에 쓰지 않는 보자기를 명절이면 가끔 볼 수 있다. 격을 높여야 하는 선물을 포장할 때 싸는 용도다.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보자기는 주로 황금색이라 금빛이다. 부귀를 상징하는 금빛이 받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선물을 받으면 화학섬유로 만들어진 포장용 금색 보자기는 물자 풍부한 세상이라 대체로 버려진다.

 설 명절 준비로 재래시장에 들렀다. 초로의 아주머니와 아들이 예쁜 조각보를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아들은 장애가 있어 보였다. 조각보를 스카프마냥 머리에 곱게 쓰고 손님을 불렀다. 어눌한 말 때문인지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당기며 호객을 하면 잡힌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뿌리쳤다. 한복처럼 고운 색감과 공들인 바느질로 조각조각 이음을 한 조각보에 끌려서 쪼그리고 앉았다. 아들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집어서 사 주세요, 사 주세요, 졸랐다. 아주머니는 찬바람에 얼굴도 손도 까칠했다. 이 추위에 들여다 보는 손님도 없는 물건을 아들과 팔겠다고 나온 모양이다.

 예쁘네요, 만드신 거예요? 아주머니는 우물쭈물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조각보를 색깔별로 몇 개 집어서 계산을 했다. 아주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딱해 보여 사기는 했으나 크게 쓰임새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다행이 접어서 검정비닐 봉지에 담아준 조각보는 부피도 무게도 부담스럽지 않아 장보는 내내 불평 없이 들고 다녔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관심 가는 나이라 설 선물 고민을 하다가 생들기름과 참기름 세트를 준비했다. 깨를 볶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짠 기름은 고소한 향과 맛이 살아 있어 고유의 영양소를 잘 보존한 착유가 마음에 들었다. 조각보를 펴서 기름병을 곱게 쌌다. 조각보 끝도 꽃모양으로 다듬어서 모양을 냈다. 흔한 기름이 꽤 고급스럽게 보였다. 정성 들어간 마음이 흐뭇해서 기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조각보는 어머니 손끝에서 만들어진 생활용품이다. 조각 천을 활용해 심미안으로 만들어진 보자기를 미술관 특별 전시실에서 본 적이 있다. 감탄이란 말로는 부족한 미적 감각에 찬사를 보냈다. 예전의 한옥은 주거공간이 협소해서 면적을 차지하는 가재도구를 넣어두고 생활하기가 불편했다. 이때 유용하게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보자기다.

 보자기는 필요에 따라 풀고 싸는 개폐가 자유롭다. 또 보자기 안에 넣을 물건의 용적을 크게도 작게도 만들어 이동과 보관이 편하다는 활용의 유연성이 있다. 기복 신앙도 작용했다. 수를 놓거나 조각조각을 공들여 이어 붙인 조각보 보자기는 치성을 드리는 것이라 복을 불러 온다고 믿었다. 정성을 많이 들여서 만든 보자기에 물건을 싸 두면 복을 싸 두는 것과 같다고 여겨 세속신앙이 작용하기도 했다.

 인륜지대사인 혼례에 예물을 싸서 주고 받고 했던 혼례용 보자기에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바느질을 한 것도 복 받은 혼인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보자기는 단순히 싸는 것에서 승화해 조각보로 격상이 됐다. 왕족이나 귀족용은 명주나 모시처럼 귀한 천에다 화려하게 금분을 입히기도 했다는데 민중이 사용한 조각보는 단아한 미가 있다. 현대의 미적 기준으로 봐도 세련된 색 조합과 조각 천의 배치가 예술이다. 보자기의 역사는 오래전이라 직물을 짜던 시대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생활 전반에 유용했을 보자기는 지역마다 특색 있는 조각보로 미적 감각을 더했다고 한다. 관동 지방에서는 자수조각보가 발달했고 호남지방에서는 비단조각보가 유명했고 강화에서는 모시조각보가 많이 제작됐다 한다. 생활 소품인 조각보에 미적 감각을 입혀 예술품으로 격상시켜 사용한 옛 여인들의 솜씨를 따라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산 조각보는 공장에서 다급하게 만들어진 것일 테지만 금색 보자기보다는 훨씬 자태가 고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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