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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웅 변호사
2017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운동(Me Too Movement)이 세계적으로 확장돼 우리나라에서도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서 선배 검사의 성추행을 폭로한 이후 문화계와 언론, 정치, 기업, 대학 등 사회 거의 전 영역에서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미투운동은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자행됐고 그 힘에 의해서 은폐된 성범죄를 대중에 폭로함으로써 사회적인 해결을 모색하는데 의의가 있다. 미투운동의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며 가해자에 비해 ‘사회적 약자’였다는 점에서 이중의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적시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미투운동으로 연대해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미투운동을 통해 우리는 각 분야에서 나름의 존경을 받아온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러 왔다는 것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미투운동으로 지목된 가해자들 중 상당수는 일회성 성폭력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범죄를 저질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일은 가해자가 우월한 권력 구조를 이용해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고 신고를 막아 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강하게 거부하거나 폭로할 경우 피해자의 사회적 경력도 파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사실을 알리기 어려웠고, 이런 억압적인 구조가 반복된 성범죄를 양산해온 것으로 보인다. 억압되고 왜곡된 권력구조에서 약자였던 피해자들이 연대해 거대한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 냈다는 점만으로도 미투운동은 지지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단순한 명제가 사회의 고착된 권력구조 아래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동안 성폭력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강화되고 성범죄와 성희롱 방지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도 많았지만 또 다른 곳에서 교수가 학생을, 선배가 후배를, 극단 대표가 신인 배우를 상대로 지속적인 성범죄를 저질러 왔음에도 피해자들은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미투운동이 주로 저명인사를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밝혀지는 성범죄는 빙산의 일각일 것으로 보인다. 직장과 학교 등 우리의 주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심각한 성범죄에 노출되었지만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투운동을 통해 우리 주변도 성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고, 누구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투운동의 피해자 개인적으로 본다면 과거의 피해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굳이 수치스러운 상처를 들추어 사회적 이슈의 한가운데 서는 것보다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피해자들이 미투운동에 동참한 것은 용기 있는 고발자들이 고립되지 않게 하려는 것과 나아가 진실을 밝혀 다시는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 개인의 폭로는 가해자 개인을 상대로 하지만 피해자들이 미투운동으로 연대했을 때 그 칼날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투운동으로 인한 폭로 그 자체에 천착하기보다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은폐돼 있었던 모순과 불합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미투운동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

 최근 미투운동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 보도는 미투운동의 사회적 함의를 전달하기보다는 성범죄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데 혈안이 돼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일부 과열된 여론은 사건과 관련이 없는 가해자의 가족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겨누거나, 피해자를 가장해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까지 있다. 이런 행동은 용기 있는 피해자들로 인해 조성된 소중한 기회를 개인적 망신주기와 복수의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미투운동은 관료적 권력 구조에 숨어 있던 부조리와 병폐를 폭로해 우리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또, 반성적인 태도로 미투운동이 피해자와 가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운동에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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