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농협안성교육원 교수.jpg
▲ 전성군 전북대 겸임교수
어릴 적 고향마을에 하얀 눈이 내리면 동구 밖에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동생보다 눈사람을 크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눈을 뭉치고 굴리다 보면 하얀 눈 아래 묻혀있는 검정 흙이 묻어 나와 눈사람을 망쳐놓곤 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흙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겨울과 함께 찾아온 눈이 흙이라는 본질을 덮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울눈을 좋아할 뿐 덮어 버린 흙은 외면해 버린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흙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덮어 버린 고정관념, 편견, 오해 등이 눈일 것인데, 보기에 좋은 하얀 눈에만 관심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흙의 진실을 파헤쳐 보자.

 흙은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 삶의 터전이며, 우리 농업의 바탕이다. 흙은 생명체로서 한 줌의 흙 속에는 수천 수억의 토양미생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흙을 바탕으로 식물도 자라고 사람도 살아간다. 어쩌면 사람과 흙은 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루는 인토불이(人土不二)다. 때문에 흙이 병들면 사람도 병약해진다. 병든 흙은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고, 그 흙에서 난 농산물은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된다.

 또한 흙은 오곡백과를 생산해 우리를 먹여주고, 섬유를 만들어 우리의 몸을 보호해 주며 나무를 키워 우리의 삶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도 흙이 식물을 키워 산소를 생산해 주고, 뭇 동물이 쏟아내는 온갖 배설물과 쓰레기를 분해해 우리의 환경을 깨끗이 정화해준다. 그뿐만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흙이 베풀어주는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흙은 ‘생명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흙이 생명체로서 살아 있어야만 모든 만물이 비로소 소생을 하고, 인간에게 밝고 쾌적한 미래를 보장해준다. 절대로 상대를 기만하지 않는 진실한 흙, 두 쪽의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열 배 백 배로 보답하는 흙, 사람의 발에 짓밟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짓밟는 사람을 떠받쳐 주는 흙. 흙은 이토록 진실하고 겸손하며 모든 사람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또한 흙 속에 뿌리박은 민들레에서부터 이름 모를 나무에 이르기까지 진정 고향은 흙 속일 게다. 흙이 몸이 되고 물이 핏줄이 되는 자연의 일원으로 이 이름 모를 초목들도 사람과 함께 살아온 것이다.

 옛날 조상들은 농사일 때문에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날씨가 추워도 걱정, 더워도 걱정이었지만 결국엔 자연의 섭리로 알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흙의 진리를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춘원 이광수도 「흙」에서 진리를 찾았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흙의 주제는 파탄지경에 처한 농촌을 조금이라도 되살리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농촌 계몽이 필요하므로 지식인들은 농촌계몽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허숭을 비롯해 김갑진, 윤정선 등 중심인물들 모두가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에는 농촌 계몽운동의 전선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전개됨으로써 이 같은 주제가 뚜렷이 표출됐다. 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이 같은 주제의 안쪽에는 자기희생 정신에 바탕을 둔 순결한 도덕적 의지를 통한 대아의 실현이라는 속뜻이 숨어있다. 여기서 순결성과 열정이 「흙」의 전개를 주도하는 기본 동력이다. 「흙」에는 김갑진 이건영 윤정선 등 높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임에도 돈과 성욕을 좇은 타락한 향락 생활에 젖어 있는 인물들이 무더기로 등장, 허숭의 삶이 대변하는 이같이 순결하고 열정적인 도덕적 의지와 대비돼 있다.(이광수의 「흙」 중에서)

 앞으로 흙을 살리고 지키는 일은 현대인에게 부과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지금 현대인의 삶에선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이미 젊은이들은 농촌과 농업이라는 이름을 잃어 버렸다. 농업인들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흙 속에서 희망을 찾자. 흙은 움트는 새싹 앞에서 갓난아기 키우는 어미다. 흙은 말라 비틀어지거나 벌레 먹은 줄기와 잎과 열매 앞에서 애가 찾는 어미다. 흙은 잎새가 비록 무성해도 가뭄과 장마가 아니어도 마음 못 놓는 어미다. 흙은 잘 익은 열매를 거두고도 근심 많은 어미다. 그래서 인간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래도 보기 좋은 하얀 눈에만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매사 짓밟았던 흙을 재차 짓밟을 것인가? 한 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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