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희.jpg
▲ 황주희 연천군 종합민원과 민원팀 주무관
요즘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란 말이 있다. 감정노동이란 직업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감정 표현을 연기하는 일을 수반하는 노동을 말한다. 주로 고객을 직접 응대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드러내야 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해당된다.

 이른바 ‘부천 백화점 갑질 모녀사건’, ‘땅콩 회항사건’ 등으로 더욱 부각된 감정노동이란 말은 다양한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아침에 군청에 출근하면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한다. 등초본, 인감, 제증명 발급 등 단순 업무 문의에서부터 사회복지제도, 환경문제 등 전문분야에 대한 업무까지 문의 내용도 다양하다.

 이러한 민원인들 중에는 간혹 본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폭언을 하거나 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동일한 내용의 민원을 반복적으로 올려 업무의 비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경우도 있다.

 한 예로 연천군청 및 읍면 주민센터의 민원실은 점심시간에도 민원인을 응대한다. 업무 대직자와 교대로 식사를 하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곧바로 돌아와 정상근무를 하는데도 점심시간에 민원 응대 직원이 줄어들어 민원인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곧바로 항의를 받곤 한다.

 "여기 왜 이렇게 직원이 없어! 다들 어디 갔어!"

 "죄송합니다. 저희가 교대로 식사를 해서요, 순차적으로 처리해 드릴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바쁜 시간 쪼개서 왔는데! 내가 얼마나 바쁜 줄 알아!"

 가시 돋친 말투와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을 보며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순간 울컥!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하루 종일 우울하기도 하지만 공무원이기에 새로운 민원인을 응대할 땐 이러한 감정을 숨기고 스마일 마스크(smile mask)를 써야만 한다.

 이러한 몇몇의 악성 민원인들로 인한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완화하기 위해 최근 전국 245곳 지자체 중 11곳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조례’를 제정했다.

 감정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제정된 이 제도는 감정노동자의 인권 침해에 따른 대응수칙, 권리구제를 위한 제도와 절차, 휴게시설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지만 감정노동자들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악성 민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 규정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 노동자들을 대하는 주민들의 배려인 것 같다.

 공무원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응대한 민원인들이 스치듯 전하는 감사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내가 제공한 서비스를 기억해주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고 그들의 입장이 돼 생각을 해보곤 한다.

 연천군 홈페이지에는 ‘칭찬 합시다’라는 게시판이 있다. 만족스러운 민원서비스를 제공한 연천군의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게시판인데 올라오는 게시글의 수가 건의사항을 올리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글에 비해 한없이 적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오늘 당신에게 기분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 ‘감정노동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은 아마 신이 나서 당신이 보내준 감사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하고자 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