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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2017년 10월 5일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 보도에서 비롯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요즘 한국 사회를 크게 뒤흔들고 있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전 검찰 간부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폭로한 데 이어 문화예술계, 정치계 등 여러 부문에서 성추행·성폭행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추행·성폭행에 대해 너무 무감각한 태도를 보여 왔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잘못된 문화와 의식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여성 차별적인 남성우월주의적 문화,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함부로 대하는 갑질문화, 비뚤어진 성 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원인을 제공했을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할 수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성폭력 범죄 1심 판결에서 유기징역을 선고한 비율은 22%에 불과했고, 반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한 비율은 74%에 달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문화·의식의 개선과 법원의 태도 변화가 수반돼야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의 미투운동을 사회 발전을 위한 뼈아픈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고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지혜와 노력을 모아야 한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형법 제307조는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형량이 가중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현행법은 이처럼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투운동에 참여한 여성들도 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때문에 이를 우려하면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요구하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비판의 대상이 돼왔다. 언론기관이 사회지도층의 비위사실을 보도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형법 제310조에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기자가 처벌받은 실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진실한 사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을 인정받아야만 처벌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기자는 비위 사실을 보도할 때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막음으로써’ 우리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외국은 어떨까. 영미권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지 않고, 민사소송으로 다투도록 한다(손해배상 청구). 한국과 같은 대륙법계인 독일도 내용이 허위일 때만 처벌한다. 한편,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1년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하도록 권고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2016년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형법 개정안(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삭제하고,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를 존치하되 현재의 반의사불벌죄에서 친고죄로 변경하는 내용)을 발의했었는데 현재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생각건대, 인류의 역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돼 왔다(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동설’ 주장도 그 예이다). 진실을 드러낼 자유를 보장하고 ‘침묵을 깨는 사람들(silence breakers)’에게 용기를 북돋아줌으로써 진실이 거짓을 이기도록 해야만 투명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회는 현재 계류 중인 형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한국에서의 미투 운동이 향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유종(有終)의 미(美)’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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