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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무기력해지고 매사 의욕이 없어서 병원 진료를 받았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 만성피로가 온 것이라며 수면장애에 도움이 되는 생활 습관 들이기를 권하면서 약을 처방해 줬다. 처방해 준 약 중에서 면역제나 영양제는 챙겨 먹는데 수면제는 심적으로 거부감이 왔다.

수면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 약 기운에 조종당해 약에 중독돼 갈 것 같은 의구심이 들어서다. 몇 해 전부터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친구를 봐온 터라 수면제에 의존하는 친구의 모습에 거부감이 생겨서다.

 친구는 나에게도 수면제를 권하곤 했다. 걱정 가득해 머릿속 복잡하고 몸 피곤하면 수면제를 먹으라고 했다. 약이 6시간은 재워준다며 바로 잠들게 해주는데 불면으로 뒤척거리지 말고 약 먹고 자라고 했다.

 친구가 약 기운으로 달게 잘 잤다면 새벽에 혼자 깨어나 말갛게 눈 뜨고 누워 있거나 살그머니 바깥 산책을 다녀오지 않을 것 같았다. 6시간 잘 자고 났더니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친구를 보면서 약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세계수면학회에서 정한 ‘세계 수면의 날’이 있다는 정보를 의사선생님에게 처음 들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세상 사람들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수면의 날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다.

 3월 둘째 주 금요일이 ‘세계 수면의 날’로 지정한 날짜라고 했다. 단잠을 자는 사람에 비해서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무호흡증을 동반한 코골이, 불면증을 앓는 사람들은 당뇨, 뇌졸중, 고혈압 같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고 성기능장애도 나타난다고 한다.

밤에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면 활동하는 낮에 졸음이 오고 집중력이 저하돼 교통사고뿐만 아니라 여러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경고도 들었다. 잠은 재충전의 시간이므로 충분한 숙면을 취해야 창의성도 나오고 좋은 업무 성과도 낼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는데도 수면제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면제는 복용하지 않았다.

 진료를 받은 지 한 달쯤 지났다. 잠이 오지 않아 꼬박 밤을 새우는 날이 줄고 수면 시간도 조금씩 늘어났다. 밤늦도록 휴대전화로 이것저것 검색하던 것을 멈추고 밤 10시가 되면 무작정 불을 끄고 누웠다. 환경을 양호하게 바꾸는 것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됐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잡념을 떨쳐내는 일이다.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걱정이 머릿속을 점령해 복잡한 생각으로 끓어 넘치다 보니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헝크러진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이 복잡해서 밤새 뒤척였다.

 수면제 대신에 낮에 졸리면 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서 따뜻해진 봄볕을 쬐었다. 무심하게 한참 햇볕샤워를 하고 나면 나른해지면서 복잡한 머릿속도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닦달하고 채근하는 자아비판을 내려놓았다. 실수 좀 하면 어떻고 배려 좀 덜하면 어때. 지나치리 만큼 예의 차리느라 긴장하고 있던 신경 줄도 좀 풀어놓고 내 능력으로는 어차피 해결이 어려운 문제도 내려놓기로 했다. 친구를 불러 매운 주꾸미 요리로 저녁을 먹고 착한 사람보다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살겠다고 푼수 짓을 했다. 후덕해진 배를 두드리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 몸의 24시간 사이클이 균형을 유지하며 돌아가야 생물학적으로도 생리학적으로도 행동학적으로도 활동일이 깨지지 않고 규칙적일 수 있을 것이다.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수면시간이 조화로우면 만성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고 건강한 정신도 얻을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문제는 실천하기가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대인은 편하게 잠들기가 어렵다. 더더욱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이 꿀잠을 자기란 어려운 일이다. 냉혹한 경쟁 사회에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밤낮없이 바쁘기도 하거니와 24시 영업장과 같은 밤문화가 잠을 몰아내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수면장애의 원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 달콤한 잠으로 재충전을 할 수 있는데 꿀잠 자기가 너나 할 것 없이 쉽지 않은 현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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