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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정경부장
GM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다가 1953년 국방장관에 임명된 찰리 윌슨은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 경력과 공공성이 생명인 공직생활 사이에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GM 총수다운 발언이었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에두른 표현이자 친기업 정책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당시 GM은 거칠게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년 9월~1945년 8월)이 끝날 무렵 GM은 미국 최대의 자동차 생산 업체일 뿐만 아니라 매출액으로도 미국 최대 기업으로 성장해 있었다.

 ‘모든 지갑과 모든 목적에 맞는 차 생산’ 목표대로 GM은 사회적 성공 사다리의 단계에 따라 맞춤형 차를 만들어내는 거대 기업으로 컸다. 쉐보레에서 시작해서 폰티악, 올즈모빌, 뷰익, 성공의 꼭짓점에서 모는 캐딜락까지….

 GM성장의 발판은 피를 부른 전쟁이었다. ‘민주주의의 병기고’였던 미국,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디트로이트에서 GM을 비롯해 포드와 클라이슬러 등 빅3는 차 대신 무기를 양산했다. GM은 독일의 자동차 회사 오펠과 암암리에 거래한 뒤 군용차와 전투기, 지뢰, 어뢰를 만들어 전범국 나치 독일에 팔아 넘겼다. GM은 1929년 오펠을 인수했다. ‘위대한 애국전쟁’으로 일컬으며 독일과 맞서 싸우다가 2차 대전의 전체 희생자의 절반인 2천500만 명을 잃은 소련에도 무기를 댔다.

 찰스 윌슨의 말이 있은 지 56년이 지난 2009년 여름 GM은 결국 파산했다. 국영기업이라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일으키는 미국 정부도 별도리 없이 GM을 인수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576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국민 세금을 쏟아 부었다. GM이 몰락할 경우 고용시장과 수요에 엄청난 부정적 파급 효과가 미친다는 판단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는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미국은 두 재앙 중 그 파괴력이 덜한 쪽을 택했다.

 GM의 파국은 1960년대부터 누적된 부실경영의 결말이었다. 독일과 일본 등지의 수입차들과의 경쟁에서 GM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GM은 경쟁 업체보다 더 나은 차를 생산하려는 노력 대신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지름길을 택했다.

 경쟁국들이 덤핑을 포함해 갖은 불공정 무역행위를 했다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미국 정부를 향해서는 외국차, 특히 일본차에 쿼터제를 도입하도록 압박했다. 경쟁사들의 본국 시장을 개방하도록 압력도 넣었다.

 갖은 수단을 써봤지만 쇠퇴의 길은 숙명처럼 돌아왔다. GM은 1990년대 들어서 금융 자회사 GMAC를 키웠다. 자동차 제조 부문의 부진을 벌충하려는 의도였다. GMAC는 자동차 구매에 따른 금융업무라는 고유의 영역을 넘어 영리목적의 금융거래에 뛰어들었다. 2004년 GMAC는 GM 수익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을 갖춘 좋은 품질의 차 생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씻겨내지 못했다. GM은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는데 직접 투자를 꺼린 채 또다시 손쉬운 길에 집중했다. 투자비 감축과 시간의 단축이었다. 그 방편이 스웨덴의 사브와 한국의 대우 등 규모가 작은 외국의 경쟁 업체들을 싼값에 사들이는 것이었다. 이 방법도 GM이 과거에 누렸던 기술적 우위를 되찾는데 역부족이었다.

 GM은 한 가지만 빼고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사의 뒷걸음질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 한 가지는 더 나은 차를 만들려는 집념,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결국 GM에 좋지 않은 비정상적인 수단들이 동원됐다.

 GM 경영진은 노동자, 협력업체 등 을(乙)일수밖에 없는 약자들을 쥐어짰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설비투자를 애써 외면하면서 높은 이윤을 남겼다. 그 대가로 말도 안 되는 높은 보수를 챙겼다. 주주들에게는 GM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릴 정도의 높은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으로 입을 막았다. GM의 약자 한국지엠이 희생과 파멸의 고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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