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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등짐을 진 부두노동자와 구걸하는 어린이, 초가집과 토막집, 부패하고 무능한 관리. 제국주의자의 눈에 비친 개항장 인천의 모습이다. 조선의 품격은 간 데 없고, 망해가는 나라의 비루한 모습뿐이다. 그들의 시각은 외국인이 세운 건물에 초점이 맞춰 있고, 그들의 잣대로 우리의 문화를 재단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료를 들춰 개항기 인천의 모습을 찾다 보면 국가가 있기는 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인천 개항장에 있었던 조선관아도 외국인이 남긴 자료에 의존하지 않으면 연구가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다.

 인천감리서에 이어 지금은 화도진에 집중하고 있다. 화도진은 관련 연구는 물론 자료가 적어 기초자료 확보가 급선무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못해 진척이 더디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화수동 일대가 등장하는 사진 자료를 샅샅이 살펴도 화도진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새로 구입한 그림엽서를 잘못 판독해 화도진 건물의 흔적을 찾았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화도진도, 지도, 항공사진, 졸업 앨범사진을 교차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해임을 알고 크게 실망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화도진의 대략적인 위치와 근대기 화수동 일대의 주요 도로를 찾은 일이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근간으로 삼은 자료는 화도진도이다. 화도진도는 조선말 인천연안에 설치된 포대, 화도진과 인천도호부의 건물 배치 등 다양한 정보가 담고 있다.

 당시의 지형과 도로망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산수화 방식으로 그려진 데다 중요 시설을 크게 그려 축척이 맞지 않는다. 현대식 지도에 익숙한 필자 눈에 비친 화도진도는 지도가 아닌 그림에 불과했다. 그런데 화도진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안에 표현된 지형과 도로망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지도와 상당 부분 일치했고, 화수동에서 인천역 일대와 괭이부리로 가는 옛길은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보름 동안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화도진의 대략적인 위치는 비정했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설정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만들 수 있어 조심스럽다. 다만 복원된 화도진의 위치에 문제가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도진은 서해안에 등장하는 이양선을 감시하고 한양을 지키기 위해 세운 군사시설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화도진이 되살아나 인천의 명소가 되었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복원된 건물이 아니라 화도진 터다. 또한 화도진은 성벽을 두른 요새가 아니라 건물로 구성된 관아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는 서해안을 지키는 포대의 지휘부라는 화도진의 성격상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치러지는 화도진축제 행사인 축성놀이는 그만둬야 한다. 더욱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가 화도진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미 입증됐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근 10여 년간 근대기 인천자료가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도 과거에 비해 활발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자료를 토대로 오류를 바로잡고 드러난 오류를 받아들이는 노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역사적 사실 규명은 현재 종결형이 아니라 미래완성형이다. 인천시가 큰 결단을 내려 추진하는 ‘문화유산 종합발전계획’과 ‘인천시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시행 계획 수립 용역’이 그간의 오류를 바로잡고 인천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바르게 쌓아 가는 시금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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