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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 2007년 12월 27일 제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경북 경주 안강조합장 출신 최원병 후보가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최 후보는 305표를 얻어 442표를 얻은 전남 나주 남평조합장 김병원 후보(현 중앙회장)에게 크게 뒤졌는데, 두 후보 모두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해 3, 4, 5위 후보를 빼고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한 결과 614표 대 569표로 역전을 이뤄냈다.

언론은 막판 몰표를 얻어 역전승한 원인으로 선거권자(조합장)들에게 "최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와 동지상고 동문이니 정부 지원을 얻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한 점, 1차 투표에서 3위를 한 경남 합천 가야조합장 최덕규 후보가 얻은 255표가 최원병 후보에게 몰려 영남 지역표가 똘똘 뭉쳤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한편, 2008년 12월 4일 새벽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가락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 간부라는 사람들이 농민은 다 죽어가는데 정치한다고 왔다 갔다 하고 이권에나 개입하고 있다"는 등의 강한 질책을 쏟아냈다.

 질책이 있은 직후 농협중앙회는 긴급대책회의와 비상경영위원회를 잇달아 열어 임원과 집행간부 등 24명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는 한편 중앙회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 운영, 나중에는 ‘사업구조 개편’이라 불렀다)를 골자로 한 농협개혁방안을 논의했다.

 이것이 당초 2017년까지 자력으로 필요 자본금을 마련하고 추진하려던 신경분리가 5년 앞당겨 조급하고 무리하게 추진된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농협 개혁을 위해 농협법이 두 차례나 개정됐는데(개정 2009. 6. 9. 법률 제9761호, 개정 2011. 3. 31. 법률 제10522호), 대통령은 매우 이례적으로 공개적인 개정 공포안 서명식까지 가졌다.

그는 2009년 서명식에서 "농협법 개정은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주는 역사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고, 2011년 서명식에서는 "신경분리를 핵심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은 17년 만에 거둔 성과로 헌정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면서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신경분리 후 6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달 24일 열린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농협의 차입금은 2012년 9조2천억 원에서 지난해 말 12조4천100억 원으로 3조2천100억 원(34.89%) 증가했고, 2022년에는 13조4천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차입금 이자만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배당금 축소 등 회원조합과 조합원에 대한 중앙회의 지원 역량도 크게 줄었다. 사업 내용은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조직이 비대화됨에 따라 경영관리 비용도 대폭 증가했고, 종합농협체제의 시너지효과 저하 및 조직 이기주의 만연, 수익 실현 위주의 영리회사화도 심화됐다.

 한편, 농민들은 ‘농협개혁이 도대체 농민에게 무슨 득을 가져다 줬나’고 고개를 갸우뚱해 한다. 이러한 결과를 빚은 주된 책임은 정부(당시 주무 장관은 장태평,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와 국회에 있지만, 정부 지원을 순진하게 기대하면서 신경분리를 재촉한 당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그는 회장 재임기간 8년 동안 50억 원이 넘는 보수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퇴임 시에는 퇴직금으로만 11억 원을 넘게 받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엔 ‘신경분리를 하면 안 된다’,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왜 이리 서두르는가"라면서 회의적 반응을 보인 국회의원들에게 해당 지역구 출신 농협 임직원과 조합장 등을 동원해 법안 통과 로비를 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덕(?)을 보려고 최원병 후보를 중앙회장으로 선출했던 것이 도리어 오늘날 농협에 경영악화라는 큰 부담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무릇 법을 제·개정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면밀한 검토를 선행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제·개정된 이후에도 일정 시기가 지나면 그 입법 효과를 정확히 분석·평가해야 한다. 만일 입법상의 오류가 발견되거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면 엄정한 피드백을 통해 시급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MB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의 후과와 부작용이 너무 넓고 깊게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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