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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타인의 삶을 넘겨다보면 그 속에 내 모습이 겹쳐 있어 놀라게 된다. 그래서 낯선 풍경 속에 나를 내려놓고 내면의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순수의 일탈이 필요한 것 같다.

 미얀마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느리고 한적한 미얀마의 첫날 아침 풍경은 정갈하고 평화로웠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깨끗한 호수와 주변 온통 푸른 숲이 어우러져 파라다이스에 온 것 같았다. 아침 햇살에 환해진 맑은 대기가 내 마음속 얼룩까지 말갛게 헹궈 상쾌했다. 치열하고 각박했던 일상이, 맞물려 빈틈없이 돌아가야 안심하는 하루하루가 가볍게 날아 공중에서 흩어졌다.

 파고다의 나라 미얀마는 국민 대다수가 불자(佛子)여서 좋은 일이 있거나 기념일에는 파고다를 찾아와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소원을 비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파고다는 데이트 장소이며 가족 나들이 장소이고, 동시에 불심에 기대어 생로병사를 포함한 인간사 모든 욕망과 행불행을 의지하고 기원하는 장소이다.

 미얀마에 고아와 거지가 없는 것도 사원에서 수용하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에게 부처, 부처의 가르침, 승려, 부모, 선생의 순으로 존경하도록 가르친다는 미얀마인들은 부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또 남자들은 평생에 한 번은 꼭 불문(佛門)에 들어 수도 생활을 하는데, 이것을 큰 명예로 여긴다고 한다. 통과의례를 포함해 미얀마 사람들의 삶에서 부처와 스님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벵갈만에서 남서몬순이 시작되는 5월 하순부터 미얀마는 우기로 접어든다. 파고다는 빗물에 씻기고 나면 밝은 햇살 아래 강렬한 황금빛으로 우리를 맞았다.

 고층 빌딩군이 없는 미얀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이 파고다이다. 푸른 녹음 사이로 우뚝 솟은 파고다는 둥근 지붕 위에 뾰족한 탑을 이고 웅장한 크기로 건축돼 이방인에게 신비로움을 줬다. 수천 개의 파고다 중에서 쉐다곤 파고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쉐다곤 파고다는 낮과 밤의 풍경이 사뭇 달랐다. 낮에는 화려한 금박으로 덮인 외양이 강렬한 태양빛에 반사돼 번쩍거리면서 위압적이라면 밤의 쉐다곤은 엄숙하고 신비로웠다. 여기 저기 넓은 사원에 참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불심 깊지 않은 나도 부처님에 대한 경외심에 삼가 마음이 두려워지고 또 겸손해졌다.

 파고다에 참배할 때는 반드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맨발로 긴 회랑을 돌아서 부처님을 만났다. 꿇어앉아 기도를 했다. 세상사 욕망이 끝 간 데 없이 어지럽지만 지금만큼은 부처님 발바닥보다 낮게 앉아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내 마음에 상처를 줬던 이들을 용서하고 미약한 나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귀향해 일상으로 돌아오면 오늘 밤 소박하고 착해졌던 이 마음이 먼지같이 날아가 버릴지라도 이 순간만은 단정하게 앉아서 출렁임 없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미얀마 사원에서 이색적이었던 광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부처상의 얼굴에 청수를 부어 씻어 주는 모습이었다. 죄를 씻어 가벼이 하고픈 반성과 자신의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 불심을 받고자 하는 참배 방법이라고 한다. 전생에 저지른 악한 일을 불교 용어로 숙악(宿惡)이라 한다. 숙악이 있으면 후세에 반드시 죗값을 치른다고 하는데, 윤회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대체로 말초적인 자극을 멀리하고 순리대로 선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 속을 나는 스치듯 잠시 동행했다. 그 짧은 시간들은 나를 돌아보게 한 여정이었다. 미얀마보다 2시간 30분 빠른 나의 시간은 그들 나라에서 하루 몫의 2시간 30분 동안은 다시 되돌아가 나를 점검하고 다듬은 시간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다. 미얀마에서 먹은 마음을 정갈하게 지켜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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