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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섭 문학박사
반만년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학자, 사상가, 지식인을 꼽는다면 누가 될까? 천 원 지폐의 주인공 ‘퇴계 이황’이나 오천 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율곡 이이’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히려 지폐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다산 정약용’을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꼽는 사람이 많으리라.

 지난 겨울은 유난히 지독하리만치 추웠다. 정약용 선생에게 가장 추웠던 겨울은 어느 해였을까 생각해 본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의문의 죽음이 있었던 1800년의 겨울이 아니었을까? 지금부터 218년 전 그 겨울로 돌아가 보자.

 정약용 선생은 1800년(정조 24년) 봄에 자신을 참소하고 시기하는 정적이 많음을 인지하고 한창 때인 39세의 나이에 처자식과 함께 고향인 남양주 마재(지금의 조안면 능내리)로 귀향했다.

 그러자 정조는 아전을 보내 그리움을 선생에게 전했다. 이에 감격한 선생은 정적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왕의 부름에 응답했지만, 그해 6월 28일 갑작스럽게 정조가 승하했다. 자신을 총애하고 방패가 돼 주었던 정조 임금은 죽었고, 정적들의 비방은 날이 갈수록 더욱 격렬해져만 갔다.

 그해 겨울 정조의 졸곡제를 마치고 고향에 낙향한 선생은 생가에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堂號)를 걸었다. 그 이유를 ‘여유당기’에 노자(老子) 제15장에 나오는 ‘머뭇거리기는 마치 겨울 내를 건너듯’(與兮若冬涉川), ‘두리번거리기는 마치 네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이라는 대목이 정조 임금 승하 후 선생의 처지와 비슷해 당호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시기 정적들은 정약용 선생을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관직을 버렸으니 시골 선비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모함이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관료 생활 중의 정치적·인물적 대립과 갈등을 했더라도 관직을 내놓고 낙향을 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1801년(순조 1년) 정초부터 예감대로 ‘신유박해’라는 화란이 찾아왔고, 연이어 터진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쳤다. 셋째 형 약종과 매형 이승훈은 처형됐고, 둘째 형 약전과 선생은 유배에 처해져 18년간의 추방 세월을 맞이하게 됐다.

 땅 끝에 유폐된 시기에 선생은 정치가에서 학자로 거듭난다. 정조 시대 최고의 정승으로 개혁을 주도하고 화성축조를 총괄 지휘한 채제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채제공보단 정약용 선생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1818년 8월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를 저술했다. 선생은 민중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지방관의 역할을 매우 중시했다. ‘지방관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목민심서의 주제 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5세 어린 나이로 ‘실학’에 뜻을 두고 지방의 현실을 목도한 이후부터 18년 고난의 유배생활을 마칠 때까지 힘없는 백성들의 고통에 함께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정신이 녹아 있는 역작이다.

 선생은 이 책을 짓고 해배돼 고향인 마현마을에 돌아와 500여 권의 경이로운 학문적 업적을 완성하고 1836년 돌아가셨다. 그러나 1907년에서야 처음으로 교과서에 소개된 이후, 우리 시대 모든 계층과 단체들이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현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남양주시는 해배 200년, 목민심서 저술 200년을 맞아 2018년을 정약용의 정신을 실천하는 원년의 해로 삼고자 한다.

 정약용 선생이 사랑채에 ‘여유당’이라는 편액을 걸고서 당파에 관여하지 않고, 신분의 벽과 이념의 벽을 넘고자 한 선(善)하게 살고자 했던 삶의 주제를 세웠던 1800년의 겨울이, 정치가에서 학자로의 전환이 된 선생 생애의 결정적 겨울이었듯이 2018년은, 남양주시의 시정 전반에 정약용 선생의 철학이 스며드는 대전환의 해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 전반에 휘몰아치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청렴을 강조한 선생의 정신을 공직자 모두가 이어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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