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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국제펜클럽 인천지부 부회장

반세기 이상을 대립으로 긴장 상태였던 남북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평화를 갈망해온 지라 기대가 우려로 하강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몸담고 있는 단체에서 연변을 방문한 일이 요즘 의미 있게 되새겨진다.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D 카운터 앞. 장춘으로 떠나는 남방항공에 탑승할 준비를 하며 짐을 부치고 로밍도 하고 환전도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 탑승장으로 가는 길에 퍼레이드 중인 어가 행렬을 만나 감히 왕비님과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도 누렸다.

 다음 날, 백두산 탐방을 떠났다. ‘장백산’이라 새겨 놓은 바위를 마주한 순간 숙연해졌다.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위치한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다. 백두산 전체 면적의 ⅓쯤이 중국 영토라고 한다. 중국인들이 장백산이라 부르는 백두산은 화산 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말 그대로 흰머리 산이다. 초하가 코앞인데도 곳곳에 한 길은 넘을 높이로 쌓인 눈이 이채로웠다.

  백두산 오르는 코스 중에서 북파코스는 장백폭포를 볼 수 있고 천문봉까지 지프차가 올라갈 수 있게 도로가 잘 닦여져 있다. 롤러코스트를 탄 듯 요동이 심해 현기증이 나게 곡예운전을 하는 한족의 기사는 내내 무뚝뚝한 얼굴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분단 관광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중국은 우리의 통일을 마뜩치 않아 할 것 같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동북아공정이란 이름 아래 자국 역사로 편입하더니 이제 ‘아리랑’까지 조선족의 음악이라며 자국의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여기다 우리의 무형문화유산인 ‘한복, 혼례, 씨름, 상모춤’마저도 중국 국가가 관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다. 영토뿐 아니라 정신까지 잠식당하고 있어 마음이 다급해진다.

 눈길을 걸어 도착한 천지는 운무에 쌓여 깊이도 넓이도 가늠이 되지 않는데 눈앞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났다. 우리가 넘어야 할 장애와 이해 불가한 사건과 마주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이 웅장한 백두의 천지가 우리를 시험하는 모양이다.

 두만강 중조(中朝) 국경지대로 이동해 두만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좁은 강폭은 북한주민을 손짓해 불러도 될 가까운 거리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북녘땅. 불관용과 적대로 각을 세워 대립했던 북쪽은 비루먹은 민둥산으로 상견례를 했다. 젊은 군인이 보였다.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달라는 손짓을 한다. 행색 초라한 일가를 만난 것처럼 불편하면서도 연민으로 마음이 짠해졌다. 유람선에서 틀어놓은 흥겨운 노랫가락은 어느새 민망한 흥으로 격하돼 채신없어지고, 우리는 유려하게 흐르는 두만강 강물만 속절없이 바라봤다.

 두만강 압록강엔 섬이 269개가 있고 그 중에서 중국이 105개를 가져갔다고 한다. 중국은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해 북한의 영토에 발을 담그려고 기회를 노린다. 우리의 국토를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데 가져가도록 둬서는 안 될 일이다.

 시무룩한 마음을 다독이며 선상매점에서 3국 통일 술자리를 가졌다. 중국 막걸리, 북한 명태, 한국 고추장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조합을 즐기며 통일에 대해, 절대행복이라는 명제에 대해, 통치자의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속이 상한 마음과 화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우리의 동정이 더 가진 쪽의 호사가 아닐까, 하는 반성도 해 본다.

 두만강 위에 걸쳐진 다리 중간에 그어 놓은 중조(中朝)국경선은 아이들 장난 같아 보였다. 통행증을 가진 중국과 북한 사람도, 짐을 실은 차량도 자유로이 넘나드는 다리를 우리는 멀리 돌아 이곳까지 왔는데 갈 수 없는 땅이다.

 강바람이 세차고 비까지 내리는 어수선한 날씨가 풀어야 할 남북한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전세버스 속에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엉킨 남북한 문제도 주변국과의 관계도 잘 풀어서 국력 신장에 한목소리를 내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 보내기 운동도, 연변 우리 동포 여성의 건강한 사회참여 활동을 지원하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북한의 핵이 무장 해제되고 남북이 협력해 한반도가 세상에 빛날 그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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