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서재’와 작은 것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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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서재’와 작은 것의 가치
김형섭 문학 박사/남양주시립박물관 학예사
  • 기호일보
  • 승인 2018.05.31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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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섭 문학 박사
다산유적지 ‘여유당’은 정약용 선생이 평소 손님을 맞이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짓던 서재다. 보통 서재라고 함은 서가에 가지런히 꽂인 수많은 책, 그리고 그 서재에서 책을 읽는 명사를 떠올릴 것이다. 정약용 선생의 서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약용 선생도 젊은 시절 한때 골동품을 모으고 서화에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골동품이나 서·회화는 진정한 보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여유당기, 정약용」. 그러니 선생의 서재에는 당대 명사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던 고서화와 골동품은 없었다. 강진 유배시절 다산초당에도 1천여 권의 책을 비치하고 학문 활동에 참고했고「사암선생 연보, 정규영」, 해배 이후 고향에서 500여 권의 저술을 완성한 만큼, 선생의 서재에 수많은 책들이 가지런히 서가에 놓여 있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유당에 놓여 있었던 것을 보면 ‘작은 것에 대한 가치’를 발견한 선생을 다시 보게 된다. "너 때문에 죽기도 하고, 너 때문에 살기도 한다. 너의 혀끝에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명성이 사라지기도 하고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불률(不律), 정약용」

 먼저 500여 권을 저술한 학자답게 제일 먼저 붓이 눈에 들어온다. 「불률(不律)」은 붓의 다른 이름이다. 붓은 쓰는 도구이자 ‘글’을 상징한다. 정약용 선생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쓰고, 전쟁을 막기 위해 붓을 들어야 하며, 전쟁을 일으키고 상대를 헐뜯기 위해 붓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어떤 사람은 조금만 아파도 약을 먹고, 어떤 사람은 병이 깊어도 맑게 살겠다고 약을 쓰지 않는다. 쉽게 약을 먹는 사람들은 보양을 기대하지만 몸을 해치고, 병이 깊어 가는데 약을 쓰지 않고 맑은 몸을 유지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해가된다." 「약로(藥露), 정약용」

 정약용 선생이 아끼는 물건에는 일반과 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약로 즉, 약탕기이다. 의서(醫書)를 4종류나 지었고, 유배 시절 유행병이 돈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었던 선생이기에 이상할 것은 없어 보인다. 선생은 약탕기를 통해서 지금에도 의미 있는 의술의 방법을 일깨운다.

 어떤 사람들은 아픈 기미만 있어도 약을 먹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병이 깊어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몸에 좋다면 쉽게 약을 먹는 사람은 보양이 되기를 바라지만 도리어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병이 심해져 가는데 병원에 가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맑은 몸으로 살기를 바라지만 도리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몸에 좋고 귀한 약재라고 해서 이것저것 먹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병이 심각해지는데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맑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정약용 선생은 약탕기에서 의술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 밖에 정약용 선생의 서재 여유당에는 선생이 아끼는 물건들이 더 있었다. 미물이라도 쉽사리 살상하지 않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파리채(蠅拂),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담뱃대(煙袋),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선택하기보다 모두를 받아들이고 모두를 담아주는 옷상자, 세속적 가치가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되새기게 한 등잔대, 정책을 계획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좋은 의도 아래 치밀하게 진행해서 좋은 결과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깨워주는 빗집(梳匣), 바람을 속에 간직해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는 부채(摺疊扇), 베개(枕) 등이 있었다.

 정약용 선생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에 대해 터득한 가르침을 남겼다. 서재에 놓여 있는 하찮은 물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았다. 장점과 단점, 그 쓰임을 통해 평소 몸가짐을 경계하는 데 활용하셨다. 현대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이 수많은 책을 소장한 서재를 갖추기란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쓰는 작은 물건이나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들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세상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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