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들만의 기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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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들만의 기록일까?
김형섭 문학박사
  • 기호일보
  • 승인 2018.07.11
  •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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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섭 문학박사
다산 정약용은 많은 저술을 남겼다. 500여 권의 방대한 양이다. 게다가 상투적이거나 미사여구를 사용한 글은 없고, 내용은 깊이가 있다. 동양에서 개인 저작으로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글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한순간 한 장면들의 삶의 흔적을 모아 역사로 만들겠다는 정약용 선생의 기록 정신이 발휘된 것이라 하겠다.

정약용 선생에게 한 개인의 역사로서,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사고를 하도록 하고 새로운 글쓰기 목적을 부여한 사람이 있었다. 15세에 결혼을 한 뒤 부친이 관직에 다시 임명돼 서울로 올라갈 때 함께 서울로 상경하게 됐다. 이 시절 정약용 선생은 ‘실학’에 뜻을, 학문에 뜻을 두고 정릉을 오가며 이가환(李家煥)·이기양(李基讓) 등 성호(星湖) 이익(李翼) 선생의 제자들을 만나 학문적으로 교류했다. 이 시기에 만난 복암(伏菴) 이기양(李基讓)은 바로 자식들의 죽음까지 모두 기록해 남기라고 충고했다.

"자녀 가운데 요절한 자는 마땅히 그들의 생년월일ㆍ이름ㆍ자ㆍ모습 등과 죽은 연월일까지 갖추어 써놓아 뒷사람들이 징험할 수 있게 하라. 그래서 그들의 삶의 흔적이 남도록 해야 한다."‘복암이기양묘지명(茯菴李基讓墓誌銘), 정약용’

정약용 선생에게 준 이기양의 충고이다. 정약용 선생은 9명의 자제를 낳았다. 둘째와 셋째, 그리고 여섯째 아이만 살고,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은 모두 잃었다. 첫째를 4일 만에 잃었고, 넷째는 2세, 다섯째 2세, 일곱째 3세, 여덟째 1세, 마지막 아홉째는 2세의 어린 나이로 잃었다. 아이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처음에는 죽은 아이를 생각하고 슬픔에만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평가할 만한 업적이 없기도 했지만 여느 아버지처럼 죽은 자식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한음 이덕형의 7대 손자인 이기양의 충고는 큰 충격을 주었다.

흔히 누군가의 귀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학문적 업적이나 사업을 이룬 것도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거나 기억해야 할 일대 사건이나 주인공도 아니며, 자랑하거나 내놓을 만한 성과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정약용 선생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정약용 선생은 이기양 선생의 충고 이후 일찍 요절한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제 태어났는지, 어디에서 자랐는지 기록했다. 이름과 얼굴 생김새, 특징적인 모습은 물론 죽은 시간까지 기록했다. 사람 됨됨이도 그릴 수 있도록 기록했다. 부모가 화가 나서 다투면 조용이 옆에 와서 웃음 지으면서 두 부부의 화를 풀어 주던 애교스러움, 간혹 부모가 때가 지나도록 밥을 먹지 않으면 예쁜 말로 식사를 권하는 어른스러움 등이다. 죽음과 관련해 어떤 일로 죽었는지 기록을 통해 그 삶의 흔적을 남겨 하나의 역사로 만들었다. 승자의 기록이 아니고, 위인성을 기록하는 위인전과도 달랐다. 정약용 선생의 서술 태도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짓는 글이지만 칭송일색이었던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른 것이다. 정약용 선생은 개인의 죽음을 지나치거나 버려두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과 사소한 일상을 기록해 역사로 만들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기록하고, 자신이 겪은 일도 기록하고, 자신이 만난 사람도 기록하고, 자신이 지은 저작의 연유도 기록했다. 그 기록은 누군가에게 교재가 됐고 누군가에겐 역사였으며, 사회적 국가적 문제의식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정약용 선생은 승자가 아니었다. 그 당시는 패자의 기록이 500여 권의 저술로 남아 있다. 그 기록은 지금 우리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준다. 정약용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 내가 겪은 일을 기록하는 것은 남양주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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