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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가공할 폭염입니다. 한낮의 최고기온은 매일매일 경신되고 있고 도시의 거리는 한증막 속같이 뜨겁게 달구어져 식을 줄을 모릅니다. 혹시 올 여름 더위가 인간에게 살의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이러한 예사롭지 않은 더위가 사실 인간의 욕망 때문이고 그 욕망으로 인한 환경파괴의 소산이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말하면 새삼 짜증이 날 뿐 현재로선 결코 반성모드가 돼 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길 겨를이 없습니다. 그만큼 맹렬하니까요. 그만큼 혹독하니까요.

하지만 절대자의 의도적 심판이거나 외계 생명체가 고도의 과학기술을 앞세워 사계절의 순서를 교란시키지 않는 한 폭염의 기세는 언젠가는 꺾일 게 분명합니다. 실제로 엊그제 며칠간은 여전히 덥긴 했지만 미세하게, 정말 미세하게 달라진 밤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공할 폭염을 소리 없이 순치시켜가는 도도한 자연의 순리, 그 한결같은 행보가 믿음직스럽고 경이로웠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이 시원한 것도 아닙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를 접하다 보면 그러잖아도 더위 때문에 짜증이 폭발 직전인데 만나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식들뿐이니, 국민들은 정말 다방면에서 가해지는 짜증 폭탄으로 실신하기 일보직전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꼭 그렇게 각박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요. 사실 지금도 일각에서는 그런 어리석은 치킨게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힘이 들 때 서로서로 보듬고 챙기는, 무척이나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성정을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편하고 넉넉할 때가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오히려 그런 성정이 표출된다니 참 복잡하고 요상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 아침 뉴스를 통해서 에어컨 바람보다 훨씬 시원하고 속이 뻥 뚫리는 소식 하나가 배달돼 왔습니다. 요즘 같은 계절에 야외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과 가전제품 배송, 설치 기사들이나 부지런하게 우리의 바람과 일상의 기대를 증폭시키며 원하는 물건을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들을 생각하면 실내에서 더위를 겨워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참 겸연쩍기 그지없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모 아파트에서는 택배기사들이나 음식배달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지요. 물론 혹시 모를 범죄발생에 대한 염려와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주민의 권리로서 존중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택배기사나 배달원들을 잠재적 범죄인 취급을 하거나 지극히 편의적 발상에서 그러한 조치가 취해진 것이라면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아침에 만난 기사는 참으로 신선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택배기사들을 위해서 시원한 얼음물과 간식 그리고 마음을 담은 편지를 준비해 두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사람 사는 느낌을 주는 기사가 아닌가요?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 냉수와 간식과 편지 속에는 인간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가 오롯하게 담겨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다양한 층위의 ‘갑질’들은 결국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겠지요.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폭염이 모든 사람들의 심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또한 인간이잖아요. 따라서 그러한 폭염에 응전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에어컨 바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위에서 언급한 소박한 온정과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요?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지난한 혹서(酷暑)의 시간 속에서 인공(人工)의 바람과 냉기로 돋아난 팔목의 소름을 손바닥으로 비벼보며, 톨스토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진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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