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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사회가 발전되고 복잡화됨에 따라 많은 법률들이 새로 생겨난다.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질서와 규범의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령 수는 약 3천여 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진전되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법들이 또 많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환경이 좀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또는 기존의 법을 개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법의 제·개정은 질서체계의 변화에 따른 혼란을 수반하게 되기 때문에 자칫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다. 즉, 새로운 법질서 도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보다도 오히려 혼란 초래 등 부정적 효과가 더 큰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법을 새로 만들거나 개정할 때에는 그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해서 장점이 단점보다 명확히 큰 경우에만 이를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법의 제·개정으로 초래될 부작용을 예방·해소하기 위한 방책들을 면밀하게 강구해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법을 많이 만들더라도 이것들이 사회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으면 입법 취지가 제대로 발현될 수가 없다. 따라서 좋은 법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법이 사회에 정착되는 과정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법의 실효성(實效性)을 높이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도로교통법만 만들고 위반 행위에 대한 단속을 게을리하면 위반 사례가 속출해 도로교통법은 있으나마나한 법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또한 당초의 입법취지는 효과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위반 사례를 엄정하게 감시·단속해야만 법질서가 적절하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법에 불합리하거나 비현실적인 사항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이를 개정·보완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방치하게 되면 일반인들은 법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고, 대형 사고가 발생한 다음에서야 "이런 법이 있었나?", "왜 이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까?", "왜 이 법의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사항이 진작 시정되지 않고 이처럼 방치된 걸까?"라고 뒤늦은 한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내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땜질 처방에 나서게 된다(심지어는 사후조치마저도 미흡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리미리 문제점 여부를 확인하고 점검해야 크고 작은 사고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입법부는 입법 후에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사항은 법 집행의 현장을 접하는 ‘행정부’가 더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행정부는 평상시 법 집행의 문제점을 면밀히 살펴 이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입법부에 법 개정 의견을 수시로 전달해야 한다. 또는 우리나라에서는 ‘의원 발의’ 외에 ‘정부 발의’에 의한 입법 방식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직접 법안을 발의함으로써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시의에 맞게 처리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치게 되면 사고 발생을 예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법만 만들어 놓으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있다. 그렇지만, 법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법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정착 과정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개선·보완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무원들조차 "이런 법이 있었나?"하면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어떤 법이 있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경우도 있다. 법치주의가 온전히 실현되려면, 법이 실생활 속에서 ‘살아있는 법(lebendes Recht)’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금년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공무원들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더욱 적극적으로 분발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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