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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시조문학진흥회 명예이사장
어느덧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을 지난다. 산들산들한 색바람은 곡식을 여물게 한다. 텃밭 김장용 배추는 속고갱이가 맺히기 시작하고, 무는 흙두둑 밖으로 허연 몸통을 드내밀고 있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제법 나니 결실의 계절에 스산한 마음도 일어난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 가을, 노란 국화꽃 화분이라도 준비해 어머니 산소에 가봐야겠다. 가까운 경기도 사설 수목장에 모신 지 어언 4년이 지났다. 생전의 불효를 종종 거길 찾아 뵙는 것으로 위안 삼곤 한다. 어머니 살아계실 때 화장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놓고, 화장 후 수목장에 모시고 났을 때 그리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지난달 추석 전에는 조부모와 아버지가 묻혀 계시는 먼먼 남쪽 시골 산소에 하루 종일 걸려 벌초하러 갔었다. 수십 년 전 떠나온 고향 땅 선산은 멀기도 하려니와 그간 분주한 삶에 묻혀 벌초할 때 외에는 찾기가 힘들었다. 선산 가는 자드락길은 인적이 드물어 잡목덩굴로 뒤덮여 있었다. 이를 헤치면서 무거운 예초기를 들고 찾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벌초 뒤에 먹은 간식은 꿀맛이었고, 고욤, 밤, 솔 따위 수목으로 둘러싸인 묘지는 아늑했다. 그건 한순간이었고 돌아오는 마음은 무거웠다. 앞으로 후손들이 어이 관리할지 적이 염려가 됐다.

 나는 이렇게 돌아가신 부모님을 달리 만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고 한다. 저승 어디에서 이승에 왔기에 거기로 돌아갔다고 하는가. 저승은 천국, 극락, 구천, 명부, 피안 등등 별명이 많다. 또한 어느 별이라고도 하고 마음속에 있다고도 한다. 이 말은 종교인이나 구도자의 영원한 화두라 하겠다. 나는 저승을 대자연 또는 자연이라고 하여 본다. 이승은 곧 몸으로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의미한다면, 대자연에서 이승의 사람으로 왔다가 돌아간다는 것은 다시 자연과 합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이 죽었을 때 가장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연의 일부인 흙으로 바로 돌아가는 것일 게다. 시신 매장보다 화장을 하여 그 유골가루를 풍장하거나 흙 속에 묻는 것이다. 후자가 바로 자연장이다. 장사법상 자연장의 하나가 수목장이다. 매장묘에는 묫자리를 잘못 썼느니 벌초하다 벌에 쏘였느니 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자연장에는 없다.

 나는 한때 직장생활에서 공적 추모사업을 맡아 추진한 적이 있다. 대규모 봉안당 및 자연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수도권 인접한 곳에 약 66만여㎡의 부지를 매입한 후 불철주야 지역주민과 관계기관을 찾아 다녔다. 지역주민의 동의를 받아 인허가 절차를 밟는 중에 중단됐다. 혐오시설이라 하여 지역주민의 반대로 못하는 게 태반인데, 그 지역주민이 찬성했는데도 그리 됐다. 요즘 모자라는 공설 자연장 보도를 접하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사업가라면 그리 하지 않았을 거다.

 1998년 당시 SK그룹 최종현 회장의 화장이나, 올 5월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수목장은 저승 가는 길에 있어, 이 나라 리더급의 신성한 의무를 실천한 모범사례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화장률은 84.2%에 달했고, 이제 화장 후에는 봉안당보다 자연장이 대세라고 한다. 2027년이면 자연장이 5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4%를 넘어선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8년 뒤인 2025년에는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고 한다. 국토의 65%가 산림지역인 우리나라는 수목장 조성에 유리하다. 국가는 물론 서울시를 비롯한 광역지자체장들은 인기가 없는 사업일지라도 국민의 웰다잉을 위해 화장장·자연장 등 종합추모시설을 조성하기 바란다. 12년 전에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노인 고독사에 따른 사후 알림장·유품정리업체가 급증하고, 심지어 고독사 보험까지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올해부터 시행된 이른바 웰다잉법에 따라 노인도 존엄사 할 수 있다. 나는 가까이에 모신 어머니 수목장을 찾을 때마다 함께함을 느낀다. 저승이 멀지 않다. 벌초 때 어쩌다 뵙는 아버지 산소는 멀다. 이렇게 나와 두 분 사이에는 이승과 저승과의 거리 차이가 난다.

 한 수 시조로 읊어 이저승의 거리를 잠시나마 이어 본다.

# 이저승의 거리
 눈 뜨면 이승이요
 눈 감으면 저승이다

  찰나의 틈 사인데
 어이 그리 아득할까

 이저승
 쉬이 오갈 날
 꿈이라고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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