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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들 중에는 삶의 지혜들을 배울 수 있는 글들이 적지 않습니다. 매일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빵가게에 들어와 가장 값싼 식빵을 사가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빵가게 주인은 그가 실직한 청년이라고 여겼습니다. 얼굴은 초췌했고 셔츠는 늘 구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청년이 가난하기 때문에 가장 값싼 빵을 사가는 구나"라고 여긴 주인은 청년을 측은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청년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날은 청년이 오기 전에 미리 빵에 버터를 발라 놓았습니다. 시간이 되자 청년이 버터 바른 빵을 사갔습니다. 문을 나서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주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가게 문을 열던 주인은 아주 당황스러운 일을 당했습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청년이 마구 화를 내는 게 아닌가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청년은 일 년에 단 한 번 열리는 건축설계전에 응모하기 위해 지난 몇 달 동안 열심히 도면을 그렸고, 식빵은 그 도면을 수정하는 데 필요했던 겁니다. 오늘 오전까지는 도면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마지막 수정을 하다가 그만 버터 때문에 도면이 얼룩이 져서 제출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주인의 청년에 대한 애틋함과 따뜻함이 도리어 청년의 앞길을 막아버린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나’는 잘한다고 한 일이 ‘너’에게는 커다란 상처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 잘못돼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

 회사일로 늘 바쁜 아빠에게 어린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한 시간에 얼마 벌어요?"

 "20달러."

 이 말을 들은 어린 아들은 8달러만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장난감을 사려고 그러는 줄 알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너, 장난감 사려고 그러지?"

 이 말에 시무룩해진 아이는 울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 방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마크야, 아빠가 화를 내서 미안했어. 그런데 왜 돈이 필요한 거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제 용돈이 아직 12달러가 남아 있어요. 아빠가 8달러만 빌려주시면 제가 아빠에게 20달러를 드리려고 그랬어요."

 "왜?"

 "한 시간만 아빠를 사고 싶어요. 같이 저녁 먹게요. 꼭 아빠랑 먹고 싶어요."

 아빠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이라는 책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맞벌이 하는 영순의 직장으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끊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또 걸려왔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짜증이 난 영순은 다시 전화벨이 울리자 화가 나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너, 누구야?"

 이때 모기만한 소리로 "엄마!"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얘야, 전화한 게 너였니? 너, 엄마 일할 때는 전화하지 말랬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서 만난 어린 딸에게 왜 전화를 걸어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저기, 베란다에… 꽃이…"

 베란다에는 10년에 한 번만 핀다는 행운목이 있었습니다. 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어린 딸은 그 좋은 향기를 엄마도 맡게 해주려고 전화를 했던 겁니다. 수화기를 베란다 쪽으로 대고는 끊기면 다시 걸었던 것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린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에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조차 모르고 살던 영순은 그제야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어린 딸에게 미안해서요.

 이 세 가지 사례 모두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그릇된 방법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너’를 바라보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그렇습니다. 사랑의 올바른 방법은 ‘너’의 상황을 먼저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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