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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승 동북아교육문화진흥원 원장
분단 70여 년 만에 한반도에 냉전의 잔재(殘滓)가 가셔지고 평화정착과 남북한 관계 개선의 훈풍(薰風)이 불고 있다. 이 훈풍은 우리가 그토록 절절하게 염원해오던 평화통일의 여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명쾌한 답(答)을 도출하기는 매우 어렵다. 분단의 세월동안 동족인 남북한이 걸어온 길이 가시밭길, 그야말로 형극(荊棘)의 길이었기 때문이며, 그동안 우리는 마치 ‘잡힐 듯이 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오기’처럼 이런 여망과 기대, 희망을 갖고 남북한 관계의 개선과 한반도 정세의 흐름을 주의깊게 지켜보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실망과 낙담, 좌절감만을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평화정착이나 평화통일의 꿈과 희망을 쉽게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반만년에 이른 역사와 전통, 1천300여 년에 이르는 ‘통일국가’로서의 찬연한 민족의 궤적(軌跡)을 오늘에 되살리고 1천만 이산가족들의 비원(悲願)을 풀어주는 가운데 ‘아시아의 중심국’으로 부상(浮上)하려는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희망과 기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쟁위기설’이 회자될 정도로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동계올림픽 참가와 함께 3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역사적인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 등에 힘입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고조되고 있다.

 바로 이런 가운데 지난 15일에는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9·19평양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해 남북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실천 방안들을 진지하게 협의하기 위한 남북고위급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엄밀하게 놓고 본다면 북한의 ‘비핵화’라는 전세계적 당위적(當爲的) 과제보다는 한 수 아래라 볼 수 있는, 남북한 관계의 개선을 위한 이행과 실천문제 협의가 주의제(議題)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던 미국과 북한 간의 정상회담 이후 이 양국 간 제2차 정상회담의 개최 시기와 장소를 놓고 설왕설래(說往說來)만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문제 역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라는 궁극적 차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최됐기 때문에 이 회담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북관계의 개선이 비핵화 진전과 궤(軌)를 같이 해야 한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과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약화·이완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가운데 열린 회담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우려도 적지 않게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발표된 바와 같이 이 회담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남북장성급군사회담을 개최해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한 문제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구성·운영문제,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 및 착공식 진행, 소나무 재선충 방제와 양묘장 현대화와 자연생태계 보호 및 복원을 위한 남북산림협력분과회담의 10월 22일 개최,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남북보건의료분과회담의 10월 하순 개최, 2020 하계올림픽경기대회를 비롯한 국제경기들에 공동으로 진출하기 위한 남북체육회담 10월 말 개최를 비롯해 이산가족 상봉 및 북측예술단의 남측지역 공연 등 7개 분야에서의 협력 이행 방안을 합의했다.

 이런 합의 내용에 대해 북한의 조성중앙TV 등 관영매체도 다른 회담과는 달리 그 다음 날인 16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야별 회담에 매우 큰 관심이 있음을 짙게 시사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및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 당국이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이행 실천과 관련한 조치, 즉 핵탄두와 핵물질, 핵관련시설 등에 관련된 리스트 제출 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유념(留念)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북한 당국의 진정성 있는 핵포기 또는 폐기의사의 표명과 이에 따른 후속 이행조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는 가운데 ‘바쁠수록 천천히 가야 한다’는 잠언(箴言)의 의미를 새삼 되새길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당국의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실천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보여지며, 남북한 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좀 더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추진돼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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