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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가짜는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진실의 가면을 이용한다. 분장한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지기 십상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여전히 진실을 흉내 내며 진짜처럼 행세하는 사이비들이 넘실댄다.

 변조된 조화가 생화보다 더 진짜 꽃같이 여겨지는 이유는 겉모습에 조작을 가했기 때문이다. 화장한 얼굴이 맨 얼굴보다 더 예쁘고 드라마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각색과 연출은 결국 가상을 실제처럼 만들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상태로 꾸미기 위함이다. 소설에서 추구하는 허구의 세계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공의 세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진실과 진실처럼 분장한 거짓이 맞서면 당장에는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이 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짜는 어둠처럼 요기(妖氣)스럽고 은밀하게 밝은 사유를 방해하며 집요하게 논리를 훼손시킨다. 또한 대중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왜곡시켜 상식을 거부케 하고 집단적 분노를 촉발시키며 불합리한 의심을 증폭시킨다. 우리가 가짜 뉴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범정부 차원에서의 단속과 처벌을 포함한 허위 조작 정보 근절을 위한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짜로 일컬어지는 뉴스에 대한 규제가 자칫 심각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유언비어 색출에 전력을 쏟았던 유신정권이나 세월호 참사 때 범부처 차원에서 유언비어를 발본색원하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의 작태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규제의 배경이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념적이라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세월호 미국 잠수함 충돌설을 비롯해 FTA 괴담설, 의료 민영화에 따른 내시경 진료비 수백만 원설, 천안함 좌초설 등등 여러 차례 굵직굵직한 가짜 뉴스에 속아 왔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름 뒤에 침대, 비아그라, 밀회설 등등의 민망한 단어가 조합된 제목의 동영상들이 여전히 온라인 공간을 떠돌고 있다.

 가짜뉴스의 압권은 과거 미국산 쇠고기 괴담설이었다. 최근에 유튜브에 ‘가짜뉴스’를 삭제하라며 104목록을 제출했다가 구글코리아로부터 거절당한 더불어민주당 허위조작정보특위 위원장인 여당의 모 의원은 자신의 지난 시절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자신이 근무했던 방송국에서 현재 사장이 PD로 있으면서 방영했던 광우병 방송이 법원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난 것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PD수첩은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재판부는 5개 핵심 쟁점 가운데 세 가지 보도 내용을 허위로 결론 내린 바 있다.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방송하고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양심이자 책무이고 권리다. 그래서 설령 나중에 허위로 드러나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여론 조작을 의도하지 않는 한 언론에 법적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PD수첩이 무죄를 선고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우선적인 권리이다. 법이나 사회제도를 비롯해 도덕이든 윤리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 개조해 나가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칼 포퍼는 자신의 저서 「개방사회와 그 적들」에서 개방사회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역설했다. 그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가능하고 제도는 오직 자유와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사회를 개방사회로 규정했다. 자유로운 토론의 전제조건은 물론 언론·표현의 자유와 대립적인 세력의 존립 보장이다. 사법적 규제와 자율적 절제는 그 과정에도 차이가 있고 결과 또한 서로 상이하다.

 집권 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아무리 따갑고 불쾌하더라도 촛불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믿고 가짜뉴스가 자율적으로 정화되도록 기다려야 한다. ‘자유주의자’라는 말이 한때 욕설처럼 쓰이던 시절이 있었다. 1970~80년대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은 자유주의자를 투철한 역사 의식을 상실한 향락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 사람들이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다시 잡은 권력 앞에 언론의 자유가 맨몸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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