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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만약 이루고자 하는 모든 좋은 일들이 동쪽에서 해가 뜨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너무도 당연하게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을 뿐더러 만약 그렇다면 의지와 노력이 사상(捨象)된 우리들의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일까요.

 다만 ‘좋은 일’의 행복한 실현 혹은 안타까운 좌절과 관계없이 적어도 자신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새로운 전망의 확립을 위해 ‘칼레파 타 칼라(아름다운 일은 이뤄지기 어렵다라는 그리스 속담)’를 외치게 된다면, 그 외침은 좌절의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시켜주는 복된 주문이 될 것이고, 반면 전망 없는 일이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일에만 온 힘을 경주하다 마지막 순간에 탄식처럼 이 말을 외친다면, 그건 자신의 땀과 눈물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최근 현 정부의 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비단 적폐라 지칭되는 과거 정권 담지자들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새로운 권력의 탄생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시민사회로부터 문제제기가 점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책의 난맥과 개혁의 유보 혹은 후퇴의 징후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라면 정부와 여당에서는 뼈아픈 성찰을 하고 초심을 떠올려야 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겠지요. 물론 현 정부의 대북정책 및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일련의 행보들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냉전적 사고방식에 여전히 젖어 있는 수구세력들의 전방위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행보들은 좌고우면할 일이 아닙니다. 확신을 갖고 추진하면 될 일이지요. 종편과 가짜 언론을 등에 업은 수구세력들의 조직적 반발과 혹세무민의 결과 남한의 지원이 북의 군사력 증강의 유력한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국민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깊이 고구된 정책과 일관된 태도로 북한을 평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고 그 구체적 성과를 토대로 국민을 진정성 있게 설득해 낸다면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은 완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수십 년간 이질적인 체제하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삶을 꾸려온 남과 북이 하루아침에 허다한 이질감을 극복하고 하나로 융화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기득권을 빼앗긴 지난 정권의 핵심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적폐의 공세가 당연히 예상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는 이유겠지요. 그 어려운 일, 그러나 ‘좋은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이렇듯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의 상황이 고착돼 왔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현재와 같은 남북평화 무드는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하는 겁니다. 다만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볼모로 당면한 개혁에 대해 후퇴하거나 미봉하려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요즘 국민들은 경제, 노동, 교육, 주택 등 자신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온갖 문제들이 불거져 나와 신문이나 뉴스 보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물론 이전 권력의 부조리가 초래한 결과가 지금에야 비로소 나타나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적 시민사회 건설을 국민들로부터 위탁받은 정부에게는 앞선 시대의 부정적 결과물까지 일소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기 때문에 곱절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고 쉽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했을 때의 성취감은 엄청난 것이겠지요. 정부에 적대적인 세력들의 반발을 핑계로, 이전 권력의 잔재 때문이라는 엄살로, 국민들의 염원을 일부 가시화시켰다는 자만심으로 평화와 자유, 민주와 평등이라는 우리 삶의 핵심적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 ‘좋은 일’을 만들어가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역사적 책무이자 자부심의 근거입니다. 그것을 위해 권력의 핵심들은 제도를 정비하고 합당한 시스템을 가동해 위임받은 책무를 건실하게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일은 실현되기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현돼야만 하는 당위가 존재하는 한 넘어지고 공격받고 비틀대더라도 가야할 길을 올곧게 가야 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역사적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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