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조정위원의 역할
상태바
형사조정위원의 역할
김사연 수필가/전 인천시약사회장
  • 기호일보
  • 승인 2018.12.11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사연.jpg
▲ 김사연 수필가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2018년 전국 형사조정위원 전문교육에 다녀왔다. 2017년 발생한 사건 187만448건 중 형사조정에 의뢰된 것은 11만8천113건이며 조정 성립률은 58.4%에 이른다. 형사조정에 투입된 1년 예산 18억 원으로 피해자의 재산 900억 원을 지켜준 성과를 냈으니 기재부는 좀 더 과감한 예산 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조정위원들은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정을 하면 가해자나 피해자에게 유리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강압적이라든가 편파적이라는 불만을 피해자와 가해자로부터 가끔 들을 때도 있다. 쌍방폭행,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한 친고죄 사건은 특히 조정 성립이 중요하다. 특수상해나 일반폭행은 합의해도 처벌을 면할 수 없으니 실효성이 없는 제도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가해자도 있다. 형사조정이 성립된 경우 88%가 불기소되고, 그 중 53.3%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형사조정에 성실하게 임하면 득이 될 것이다.

 폭력사건 중엔 외관상 상처가 없어도 실신, 보행불능, 수면장애, 식욕감퇴 등 기능 훼손이 일어나면 상해에 해당하며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유발시키면 협박죄가 성립하므로 본인이 저지른 언행의 범죄를 하찮게 여기지 말고 합의하라고 권한다.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들에게 이 사건으로 누가 가장 고통을 받겠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 자신의 부모가 가장 괴로워할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단다. 이를 지켜보며 형사조정은 금전적인 보상이나 처벌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느꼈다고 연단 위 강사는 말했다. 반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정밀한 재수사가 진행됐으면 하는 사건도 있다. 이날 모 여성 조정위원이 발표한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28세 남성 피의자와 27세 피해자 여인은 3년 전 술자리에서 사귄 후 3~4회 만난 적이 있다. 사건 당일 새벽 2시 음식점에서 술을 함께 마신 남성은 여성의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신체 접촉을 시도하다가 거부하자 차에서 내려 운전석 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라고 했다. 여성이 문을 열자 남성은 비집고 들어가 1차 강간을 했다.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남성은 여성의 주거지 주차장으로 함께 이동한 후 강제로 입을 맞추고 운전석 쪽으로 넘어가 2차 강간을 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 가해자와 또 다른 남성의 DNA가 피해자 여성이 입었던 팬티 및 원피스 등에서 발견돼 강간 혐의를 뒷받침했다. 피의자 남성은 형사조정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과드린다며 피해자가 요구한 합의금 2천만 원 중 1천만 원밖에 준비하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시간을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여성 피해자는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 직접 나타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2천만 원을 요구했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합의를 거부했다고 여성 조정위원이 사례를 발표했다. 한 남성 조정위원은 피의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전과도 함께 밝혀줘야 꽃뱀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해 남성이 차에서 내려 운전석 문으로 다가와 문을 열라고 할 때 차를 몰고 도망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한 여성 조정위원은 경험상 양측의 변호사가 출석해야 합의가 수월하다고 했다.

 나는 15년 전 인천지검 구속심사위원회에서 다뤘던 유사한 사건을 예시하며 합의보다는 차라리 구체적인 재수사를 받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 사건도 섬으로 함께 놀러간 남성의 차 안에서 1차, 시내에 와서 모텔에서 2차 강간을 당했다고 남성을 고소했다. 이 여성도 마음만 먹었으면 몇 번이나 차에서 도망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고 사건 후 안부까지 나누며 정상적으로 출근하다가 뒤늦게 고소를 했다. 당시 구속심사위원들은 공평한 법의 잣대에서 남성을 구속시키면 안 된다며 불구속 수사로 목소리를 모았었다. 1955년 70명의 여대생을 농락한 박인수 사건 당시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 보호할 수 있다’는 명판결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