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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효성 소설가
그해에 거대한 변혁이 있었다. 2014년 신년 벽두, 도로명 주소 전면 시행일로 새해를 시작한 해다.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지번이 도로명이라는 새 주소로 변경되면서 찬반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행정적인 측면에서 효율성과 편리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지 없이 새 이름을 단 도로명은 거부감을 주기도 했다. 적응할 필요한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도로명 주소가 대세가 됐고 익숙해지고 나니 편리성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도로명 주소의 시작이 1666년 런던 대화재로 도시가 전소되다시피 했을 때 런던을 재건하면서 도로망 정비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현재 OECD 국가 대부분이 채택한 것을 보면 효율성과 편리성이 뛰어남을 증명하는 주소 체계임이 분명하다.

 도로 폭이 8차로 이상인 길은 무슨 대로, 2차로에서 7차로까지는 무슨 로, 이보다 작은 길은 말 그대로 무슨 길이 된다. 건물 번호는 남에서 북쪽으로, 서에서 동쪽으로 20m 간격으로 정리해 오른쪽 건물에 짝수를 왼쪽 건물에 홀수를 부여해 주소만 보고도 대략적인 위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삶에서 찾아야 하는 길은 전혀 체계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 똑똑한 길 찾기에 애로 사항이 많다. 보여주는 대로 가면 되는 내비게이션도 친절한 길 안내 목소리도 없어서 주행 방향을 정할 때 도로 상태에 대한 정보도 길 양쪽의 상황도 목적지에 대한 정보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행을 한다.

 모험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닦여진 길을 택하게 된다. 도로는 노출돼 있어서 선택한 밀도가 높아 경쟁이 치열하다. 이쪽 길도 저쪽 길도 아닌 다른 길은 호젓해 보이기는 하나 선뜻 발을 딛기가 망설여진다.

 도전이나 개척자다운 면모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교차로를 만나면 어느 방향으로 진행할지 주저하게 되고 혼잡한 길에서는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 혈압이 오른다. 이런 신경증은 우리를 조급하게도 비판적이게도 하고 불신으로 급좌절해서 완주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목적한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생각을 낳고 새로운 장소에서 결심이 바뀌기도 하는 파란만장이다. 긴 시간이든 순간이든 길 위 여정 중에 갈등하고 위안하고, 팽개쳤다 다시 추진력을 높이고, 체력 방전이 되면 휴게소를 찾아 쉬기도 한다.

 복잡하고 피로한 소음과 인파에도 불구하고 휴식과 안정을 기대하는 마음은 휴게소를 찾는 마음속에 은연중에 밴 습관이기도 하다.

 한 해가 시작되면 새 길을 개척해 걸어볼 각오로 주먹을 꽉 쥐어 본다.

 꽉 쥔 결심은 날씨가 풀리면서 바람결에 조금씩 흩어지고 한 해의 끝에서는 풀어진 손이 민망해 변명거리를 만들어 위로를 하기 일쑤다. 억지 위로를 삼킨 배는 소화불량으로 거북해지고 대장에 용종을 만든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움찔해서 변비가 된 마음이 뭉쳐져 한 해를 보내는 송년이 순조롭지 않다.

 사소한 것에 터무니없이 반응하는 반성을 길 위에서 하고, 이쯤에서 닻을 내려놓을까 갈등하고, 따뜻한 차 한 잔에 위로가 되고, 수수한 것보다는 웅장한 것에 마음을 실었나, 돌아보는 일 년이 참으로 긴 길이다.

 여러 갈래 길을 걸어온, 진지하기도 거칠기도 예의를 차리기도 거드름이기도 갈망이기도 때로는 어리석은 멍청함까지도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결국은 이렇게 진부한 결론을 내린다.

 급진의 혁명이 성공한 예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스며들 시간이 필요하고 신구 세력이 내려놓을 것과 취할 것을 선택할 동안에 갈등과 파벌의 내전을 거쳐야 변혁이 자리 잡을 수 있다 했으니 도로명 주소에 적응해 간 세월이 필요했던 만큼 올 한 해를 다독이며 마무리해 본다.

 새해, 습관에 젖어 헤매지 않고 똑똑한 길 찾기로 진입해 볼 것이다. 먼저 목적지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정하는 것도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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