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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계봉 시인

최근 들어 정권 말기에나 나타나는 대통령의 레임덕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출범 초기의 기대와는 달리 미숙함 때문인지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인지 묵은 폐해를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허무하게 놓쳐(혹은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의 실패, 소통의 부재, 수권의 미숙함, 독선의 팽배 등 현 정부와 여당이 보이고 있는 부정적인 행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 경제는 말이 아니고 상생의 정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민생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어차피 왜곡된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24세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작업 중에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청년의 주검은 서너 시간이나 지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됐다고 한다.

 온 나라가 이 청년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의 죽음은 결코 우연이 아닌, 구조적 모순이 초래한 예고된 죽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타살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은 상생의 정치가 실종되고 상식선에서의 정의가 사라질 경우 제2, 제3의 안타까운 죽음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걸 분노와 슬픔 속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금에 접하는 애먼 죽음의 소식들은 청년의 경우만이 아니다. 현재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하거나 수십 미터 고공이나 굴뚝으로 올라가 ‘인간 최소한의 조건’을 인정받기 위해 사선을 넘나들며 매서운 추위와 싸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병으로 죽고, 과로로 죽고, 간혹 자신들의 상황을 알아달라며 분신을 하거나 투신을 한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50여 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자본과 보수정치 세력들은 저마다의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을 위해 왜곡하고 활용하고 자주 폄훼하고 있다는 것이다.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태어난 현 정권에 대해 양심적 국민들은 크나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물론 정권 초기에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행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많은 국민들은 탈권위적인 대통령의 모습과 그의 거침없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실천에 대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하지만 착한 지도자가 좋은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착한 것과 능력 없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착한 성정이 정부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가로막고 실정(失政)조차 한숨으로 묵인해 주는 역효과를 낳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적폐청산이 끝나기도 전에 현 정부가 또 하나의 적폐가 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퇴행의 중심에는 교만해진 참모들과 대통령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앞서 말한 24살 청년의 죽음에 대해서도 "청년 개인에게는 무척 슬프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게 어디 대통령의 책임이냐"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그러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많은 시민들은 현재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선택했던 것이다.

 국민들은 이 대목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당시 여당과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아이들을 죽게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냐"라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다면 전 정권의 직무유기와 ‘문파(文派)’들의 유체이탈 화법은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란 ‘한 방에 훅 간다’는 표현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다.

 권력의 달콤함이 그들의 바른 판단력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아, 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두려운 기시감을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와 같은 진부한 위로는 하지 않겠다.

 적폐청산과 관련해서는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초심으로 돌아와 국민을 정책의 중심에 놓고, 도대체 무엇이 꿈 많은 청년과 성실한 가장과 당당한 노동자와 애틋한 모녀와 허다한 장삼이사들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들 또한 전 정권의 전철을 되밟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한 번 떠난 민심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국민을 자기편으로 확보하지 못한 권력의 끝이란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했는가.

 그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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