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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락기 한국시조문학시진회 명예이사장
새해 아침 일출을 보러 귀임봉에 오른 지 엊그제 같은데 소한 대한이 지났다. 또 한 해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1월도 다 지나간다. 매년 초순이면 그해 띠에 대한 기사가 저널리즘을 장식한다. 기해년 올해는 황금돼지띠라 한다. 양력 위주로 생활하는 요즘은 띠 계산도 그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입춘을 기준으로 띠가 바뀐다고 하니 아직은 돼지해가 아니다. 돼지는 재복과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예전 여느 시골집 돼지우리에 음식찌꺼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던 토종 흑돼지가 생각난다. 여러 마리의 새끼들에게 올망졸망 젖을 물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명절 때에 잡아서 온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나눠 국 끓여 먹던 서민들의 영양 공급원이었다. 지금이야 애완용으로도 기르지만, 반백 년 전만 해도 서민층에게는 귀한 고기였다.

 해가 바뀌면 누구나 그해 자기 운세가 궁금해진다. 복점을 치거나 이른바 역술원을 찾기도 한다. 그전에는 역전이나 길거리에 돗자리 깔고 앉아 토정비결을 봐주는 이도 더러 있었다. 요새는 인터넷 사주팔자 사이트도 많고, 특정인에 대한 명리 특강 1인 방송도 있다. 사람마다 길흉화복이 다를 것이다. 원단 일출을 보며 올해 소원을 빌었듯이 보다 좋은 꿈을 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로또 당첨, 출세가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등 그 사유도 가지가지다. 그 가운데 돼지꿈은 흔히 길몽 중의 길몽이라고 한다. 경주 불국사 극락전 현판 뒤에는 자그마한 돼지 조각상이 숨겨져 있다고 한다. 즐거움이 넘쳐나는 낙원세상에 사는 동물, 재운과 행운이 넘쳐나는 복돼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처한 현실은 힘들더라도 미래는 누구에게나 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나는 새해 들어 오래전 보았던 우리나라의 도참서나 한민족 고유의 경전들을 다시 꺼냈다. 천학이라 그 심오한 속뜻을 깊이 알 수는 없다. 「천부경」은 천지인 나아가 우주만물의 생몰 변화에 대한 수리철학서, 「삼일신고」는 하늘·신·세계·진리 등에 대한 종교철학서, 「참전계경」은 인간사의 몸가짐과 수행에 대한 윤리철학서라 해본다. 이 모두가 배달 신시시대부터 누천 년간 전해온 것이라 한다. 경전 구절들의 기저에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사상이 깔려 있다. 실천방법론으로 세상을 이치로써 교화한다는 ‘제세이화’사상이 들어있다. 좌우 진영의 극단논리가 판을 치는 이 시대, 이런 너그럽고 크나큰 전 인류애적 보편사상이 어디에 또 있는지 자문한다.

유불선 3교와 기독교의 통합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그 옛적 우리 조상들이 믿었다는 ‘신교’라는 것과 신라의 최치원이 말한 ‘풍월도’라는 것이 바로 이런 사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래의 길흉을 예언한 도참서는 작자가 불명확하거나 난세에 기록된 것들이 상당하다. 측자나 파자로 돼 해석이 어렵고 사람에 따라 달리 풀기도 한다. 근년에는 충주댐이 생기기도 한참 전에 월악산 큰 물가에 달이 비칠 때 여자 임금이 나온다고 한 탄허스님의 예언이 다시 회자된 바 있다. 도참서에 실린 세상의 말운론을 본다. 지축변동으로 인해 지구 대변고가 일어난다. 많은 생명이 위기에 놓인다. 착한 자는 살고 악한 자는 죽는다. 이때 진인(眞人)이 나타나 난세를 구원하게 되고, 이후에는 한민족이 앞서서 전 인류를 이끈다. 신시시대 같은 잘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장수 시대가 도래하며, 꽃다운 광명세상이 펼쳐진다. 이가 바로 극락이오 천국이며 도원경이 아닌가 한다. 그 도원경으로 가는 길목에서, "불타는 맘을 꺼라 가난한 자 복 있단다/ 낮은 데로 임할수록 검불마저 비춰지니/ 예수가 해인삼매 중 화엄경을 설한다"라는 나의 연작시조 ‘바다의 심층심리학’ 중의 일부로 이어 본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도 영생하지 못했다. 오면 가고 가면 오는 게 세상이치다. 순리가 사는 길이다. 남녘에서 매화 꽃소식이 들린 지 제법 됐다. 음력 정월 설날과 입춘이 다가오고 있다. 작심삼일로 연초 계획을 접은 분이 있다면, 대문에 ‘대길’이라 입춘방을 크게 써 붙이고 다시 시작해도 된다. 모두가 돼지꿈 꾸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물질적 재복은 물론이려니와 마음의 재복을 받는 복돼지 꿈, 정녕 마음이 풍요로운 꿈을 꾼다면 도원경 세상은 바투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복돼지 단시조 한 수 바친다.

 <복돼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찌꺼기도 달게 먹고
 
 삭히다 괴고 익혀
 살코기로 피어설랑
 
 겹살로
 보시하는 정
 
 이 보살은
 또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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