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한동안 구(區) 명칭을 바꾸는 문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동서남북으로 대변됐던 지난날의 구명이 광역시 체제에서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구가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고 남구는 남쪽이 아닌 도시 가운데에 있다는 것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지역의 특색이나 역사성을 고려치 않고 정해진 구명이었기에 이제부터라도 지역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새 이름으로 바꾸면서 아울러 도시 브랜드를 향상시키자는 의도였다. 지금은 남구만이 유일하게 ‘미추홀구’로 변경 시행하고 있지만 점차적으로라도 추진이 필요한 사안이다.

 동구에서도 그 대체 명칭으로 ‘화도진’이 자연스레 부각됐는데 아마도 동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구는 전근대 인천부 다소면 산하의 고잔리와 송림리가 중심이었다. 인천 개항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해안에 위치해 숲이 무성한 산지와 구릉지였고 농경지와 대지가 일부 섞여 있었던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이었다. 인천의 해안이 그러하듯이, 이 지역 역시 해안방어를 위해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지금은 없어졌지만 창영동 일대에는 고려시대에 쌓았다고 전하는 성터가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동구 지역이 인천 역사에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화도진(화도진)이 설치되면서였다. 개항기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 등을 거치면서 강화와 영종도에서의 외적 방어선이 무너지자, 결국 내륙의 인천 해안에 수도방비를 위한 요새가 필요하게 됐고 이로써 탄생한 것이 1879년의 화도진이었다. 자연스레 인천의 중심지가 됐는데, 인천 개항 4년 전의 일로 인천 개항 불허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화도진은 군사령부로 묘도포대, 북성곶포대, 제물포포대, 호구(논현)포대 등을 관할 연계하면서 해안에 불법으로 나타나는 외국 선박들을 감시했다. 그런데 인천과 부평 연안에 진과 포대를 구축하던 기간 동안에도 일본은 인천을 개항지로 요구하고 있었고, 그들이 축조한 건물이 포대 경내를 침범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임오군란(1882) 이후 우리 정부가 일본에게 인천 개항을 허용하고 그에 따라 화도진이 훈련도감으로 이속됨으로써 그간 어렵게 축조했던 진과 포대 등 방비시설이 유명무실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인천 개항과 함께 인천항 주변에 시가가 조성되면서,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 각국조계지의 인구가 증가하고 인근의 땅값이 치솟음에 따라, 동구지역은 오히려 새롭게 주목받는 입지적 조건을 가지게 됐다. 값싼 토지와 무한한 노동력은 이 지역에 정미소, 양조장, 성냥공장 등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는 요인이었는데 화평동과 화수동, 창영동, 송림동 일대에는 운반업과 상업에 종사하거나 부두와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철길은 외국인과 조선인 거주 공간의 경계가 됐고, 경인철도는 좀 더 신속하게 수도권에 식음료와 생필품 등을 공급할 수 있게 했다.

 인천 최초의 신식 교육 발상지인 인천영화여학교가 설립되고(1892) 이어 남학교가 생긴 이래(1893), 을사늑약을 전후해서 교육구국운동이라는 형태의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한말 애국지사 정재홍이 설립한 우각리의 천기의숙(인명의숙), 송림동에 설립된 이문학교와 야학, 화도리에 설립된 화도의숙과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가 우각리에서 개교했다(1907).

 1919년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와 인천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했고, 지역 주민 300여 명이 합세해 인천 시내를 중심으로 배다리와 만국공원 등지에서 항일 독립만세운동을 개시했다. 인천은 조선의 그 어떤 지역보다도 일본의 영향력이 큰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학생과 민중들은 식민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첫 시위운동을 나흘 동안이나 인천 심장부에서 전개했다. 1920년대 이후에 발생하는 인천지역 정미소와 성냥공장에서의 노동쟁의는 민족적인 성격으로 발전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거점이 되었으니 동구 지역이 민족적 자각에 있어 타 지역보다 앞선 것은 명약관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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